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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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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족(먀오어: Ghaob, Xongb, Hmub, Mongb, 중국어: 苗族, 병음: Miáo, 묘족)은 중국의 56개 공식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먀오족은 중국어 명칭으로, 실제로는 몽족(베트남어: Hmông/Mèo, 태국어: ม้ง/แม้ว (Mong/Maew)), 아마오족(A-Hmao) 등으로 자칭하는 여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고 있으나 그 구성원들 중에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연관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먀오족 사람들이 서로와 모국어로 소통할 수 없고 일부는 스스로가 먀오족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먀오-야오 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문화적인 유사점을 가지며, 몽족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먀오족 집단은 먀오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분류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먀오족은 주로 중국 남부의 구이저우성, 후난성, 쓰촨성, 윈난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광둥성, 후베이성 등의 산지에 거주하며, 일부 집단은, 특히 몽족의 경우,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로 이주하였으며, 라오스에서는 1975년 공산주의 정부 수립 이후 미국 등 서방 세계로 많은 몽족 난민이 이주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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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족과 몽족
먀오족(苗族)이라는 용어는 1949년 중국 남서부의 언어학적으로 연관된 소수민족들을 포괄하는 민족명으로서 공식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먀오족이라는 용어는 비한족 민족들에게 일관적으로 부여되던 이름이 아니었으며, 중세 문헌에서는 한족 문화에 동화되지 않은 중국 남부 토착민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의 말이었다. Ruey(1962)에 따르면, 중국어에서 묘족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방식은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기원전 2300년에서 기원전 200년까지의 전설적 시기, 그 후 이 용어가 일반적인 "남부 야만인"을 지칭하는 데 쓰였던 서기 1200년까지의 시기, 그리고 아마도 몽족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현대 시기이다.[1][2][3] 어떤 이들은 먀오족이라는 정체성이 19세기의 먀오족 반란 중에 나타났다고 주장한다.[2]
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소수민족인 '먀오족' 집단을 구성하는 4대 주요 하위 민족들은 문화적, 역사적 공통점이 적고 언어도 서로 알아들을 수 없다. 이 네 민족 중 어느 누구도 중국에서 별도의 소수민족으로 공식적으로 지위를 얻지 못했으며, 중국에서는 각 언어가 먀오어의 하위 지역 방언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1949년 소수민족 지정 이후 형성된 이들의 '묘족'으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은 외부 몽족들과의 대조적 교류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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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유구한 역사를 지닌 먀오족은 문자가 존재는 했지만, 정확한 기원은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의 전설에서는 치우를 조상으로 여겼으며 탁록 전투에서 패배하고 남방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했다. 또한 전설에는 동정호 주변에 이들이 삼묘(三苗) 왕국을 이루었다가 하나라 우왕에게 패했다고 전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의 형성에도 관여했다는 설이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지역의 먀오족과 한족이 오랜 역사 동안 충돌하며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일부는 숙묘하고 일부는 서남방으로 이주(생묘)하여 지금의 먀오족의 선민이 되었다. 이 당시 남쪽으로 옮겨간 먀오족 집단은 귀주성이나 사천성 남부의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터전을 잡거나 산간계곡, 산간 저분지에 거주하였다. 수·당 시대에는 남북통일로 인해 중국 분열상태가 마치고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촉진함과 동시에 먀오족의 수도 늘어났으며, 귀주(구이저우성)를 중심으로 하여 운남(윈난성) 등지로 이주를 하였고 이때부터 이 지역이 먀오족 분포의 중심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먀오족의 이주가 이뤄졌으며, 점차 호남, 호북, 귀주, 운남, 광서, 하북, 섬서성 등의 분포 구조를 형성함과 동시에 동남아 지역으로도 유입되어 국제적 민족이 되었다.
중국 사서에서 묘족의 이름은 당나라 대가 되어서야 다시 등장한다. 명나라 대의 14~15세기에는 여러 차례 묘족 반란이 일어났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이때 수많은 먀오족이 학살당하고 먀오족 소년들에 대한 대규모 거세도 이루어졌다.[4][5][6]
청나라 대에도 먀오족은 3차례나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청나라에 큰 위협이 되었는데 1726년 옹정제가 권신 오르타이를 총독으로 파견하여 1731년까지 반란을 진압하게 했을 정도이다.[7] 잇따른 전쟁으로 먀오족 인구의 과반수가 사망하거나 난민이 되었다고 하며, 이는 먀오족의 동남아시아로의 유입을 가속하였다. 진압 이후 중국 남서부에는 더 많은 군사 주둔지가 설치되었고, 한족 병사들이 구이저우성으로 이주하여 묘족 여성들과 통혼하기도 했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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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포
중국에 약 730만 명,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에 약 100만 명, 라오스에 약 46만 명, 태국에 약 16만 명이 거주하며, 그 밖에 미국에 26만명이 산다.
먀오족의 중국 영내의 주요 분포 지역은 구이저우성, 후난성, 쓰촨성, 윈난성, 광시 좡족 자치구이다.[10] 중국 외무부 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의 4대 소수민족은 장족, 만주족, 회족, 묘족이다. 귀주성에 전체의 약 50%에 달하는 가장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인구는 중국에서만 900만 명이 넘어 비교적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소수민족이며, 그 분포도 귀주성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인구와 광대한 분포지역에 거주하는 먀오족은 복식도 그 종류와 양식에 있어 다양하며, 언어의 경우 한족과의 장기간 교류로 인하여 중국 내에서는 중국어와 한문을 겸용하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인 리족은 묘족과 다른 부족으로 분류되지만, 리족의 주된 거주지인 하이난성에는 예부터 리족과 묘족이 함께 살았다.
언어
대부분 먀오어로 통칭되는 몽어파의 다양한 언어나 방언들을 사용한다. 일부는 중국어나 중국어의 방언을 사용하기도 한다.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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