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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고델라바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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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고델라바탈리아(Moriago della Battaglia)는 이탈리아 베네토주의 트레비소도에 위치한 코무네(지방자치단체)이다. 베네치아에서 북서쪽 약 50 킬로미터 (31 mi), 트레비소에서 북서쪽 약 25 킬로미터 (16 mi) 거리에 있다.
크로체타델몬텔로, 파라 디 솔리고, 세르날리아델라바탈리아, 비도르, 볼파고델몬텔로 등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절 현 지명이 생겼으며, 당시에 이곳은 피아베 전투 최전선이 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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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모리아고델라바탈리아는 피아베강 좌안 북쪽으로 뻗어 있다. 모리아고 지역을 흐르는 또 다른 물줄기로는 라보소(Raboso) 개울이 있다.
역사
1112년에 처음으로 무를리아고(Murliago)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다. 중세 시절에는 영지였으나, 13세기에 들어서 이곳의 영주 지배력은 트레비소에 넘어가면서 폐기되었다. 같은 시기, 비도르의 수도원 수도사들이 이 지역 토지 매입에 나서기도 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에 넘어간 뒤, 모리아고는 오랜 기간 인접한 비도르에 속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던 1807년에 이곳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되었으나, 1810년 다시 한번 비도르로 편입되었다. 오스트리아 통치 시기인 1819년에 자치권을 회복했다. 지명에서 나타듯이, 피아베 전선을 따라 위치했기에 대전쟁 때 극심한 피해를 겪었다. 이 시기와 관련 기억해야 할 것은 1918년 10월 27일의 영웅적인 위업으로, 그날 제23 군단 병력은 주세페 바카리 장군의 지휘 아래 강을 건너, 이후 ‘이솔라 데이 모르티(죽은 자들의 섬)’라 불리게 된 지점에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은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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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및 명소

- 교구 교회
리모주의 성 레오나르도에게 봉헌된 이곳의 기원은 프랑크족의 지배 기간인 1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가 시작된 무렵 이곳은 비도르 수도원에 속했다가, 1375년에는 세르날리아 본당에 속한 독립 교구로 승격되었다. 사목구는 1569년에 설립이 이루어졌다.
현 건물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파괴된 18세기의 교회 건물을 대체하기 위해 1922-1925년 사이에 세워졌다. 알베르토 알파고 노벨로가 설계하고 에우제니오 베케가토 주교가 축성한 이곳에는 전쟁 중 훼손을 피한 일 포르데노네의 귀중한 제단화가 남아있다.[1] 돔의 안 쪽 장식은 구이도 카도린의 작품으로, 처음에는 조반니 찬초토와 그 뒤에는 아스톨포 데 마리아아와 협업을 했다.[2]
- 버섯 주택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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