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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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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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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영부인(영어: 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 약칭 FLOTUS)은 미국의 대통령의 아내이자 백악관의 안주인을 지칭하는 비공식적인 호칭이다. 영부인이라는 직함은 헌법에 명시된 공식 직책이 아니며 선출직 또한 아니지만,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이자 국가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미국 정치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1] 현재 미국의 영부인은 제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이다. 그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제45대 영부인을 역임한 바 있으며, 2025년 남편의 재취임과 함께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부인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임기를 수행하는 영부인이 되었다.

간략 정보 미국의 영부인 (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 지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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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초기와 19세기

미국 건국 초기에는 대통령의 부인을 부르는 통일된 호칭이 없었다. 초대 영부인 마사 워싱턴은 주로 레이디 워싱턴으로 불렸으며, 이후의 영부인들도 대통령 부인이나 대통령의 짝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다.[2] 퍼스트 레이디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849년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이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인 돌리 매디슨의 장례식에서 그를 "우리 시대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칭송한 것이 시초라는 설이 유력하다.[3]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정착된 것은 1877년 언론인 메리 클레머 에임스가 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의 부인 루시 웹 헤이스의 취임식 보도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이다. 19세기의 영부인들은 주로 백악관의 안주인으로서 사교 행사를 주관하고 내조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나, 돌리 매디슨과 같이 뛰어난 사교술로 남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거나 메리 토드 링컨처럼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도 있었다.

20세기와 현대적 역할의 확립

20세기에 들어서며 영부인의 역할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인 이디스 윌슨은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사실상 대통령의 업무를 대리하며 '비공식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4] 영부인 역할의 가장 큰 분기점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는 여성 기자들만을 위한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고, 독자적인 신문 칼럼을 연재하며, 인권과 노동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는 영부인이 단순한 내조자를 넘어 독자적인 정치적 주체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5] 이후 재클린 케네디는 텔레비전 시대의 도래와 함께 패션과 문화를 통해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과시하는 아이콘이 되었으며, 레이디 버드 존슨은 의회 로비 활동을 통해 환경 미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입법 과정에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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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집무실

현대의 영부인은 백악관 이스트 윙에 위치한 영부인 집무실을 통해 조직적인 보좌를 받는다. 영부인 본인은 연방 공무원이 아니므로 급여를 받지 않지만, 그를 보좌하는 직원들은 연방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된다.[6] 영부인 집무실의 조직은 비서실장이 총괄하며,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공보비서관, 백악관의 모든 행사와 의전을 기획하는 사교비서관, 그리고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정책실장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1978년 카터 행정부 시절 로잘린 카터가 영부인의 활동을 공식적인 업무로 인정받도록 체계를 정비한 이후, 영부인 집무실은 대통령 집무실인 웨스트 윙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2기 집무실 역시 아동 복지와 사이버 안전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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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활동과 이니셔티브

현대의 영부인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특정 사회적 의제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보조하면서도 영부인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수단이 된다.

낸시 레이건은 마약 남용의 위험성을 알리는 저스트 세이 노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버라 부시는 문해력 증진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여 독서 운동을 펼쳤으며, 며느리인 로라 부시 역시 도서관 사서 출신으로서 교육과 문해력 문제에 집중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의 임기 초반 국민의료보험 개혁 위원장직을 맡아 정책 수립의 전면에 나섰으며, 이는 영부인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 가장 적극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셸 오바마는 아동 비만 퇴치를 위한 렛츠 무브 캠페인과 군인 가족 지원 활동을 펼쳤다. 현직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1기 임기(2017~2021) 동안 아동 복지와 사이버 괴롭힘 방지를 위한 비 베스트 캠페인을 주도하였으며,[7] 2025년 시작된 2기 임기에서도 이를 확장하여 아동의 디지털 안전과 복지 증진에 주력하고 있다.

패션과 대중문화

미국의 영부인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인물로서 그들의 패션과 스타일은 정치적 메시지 전달 수단이자 외교적 도구로 활용된다. 영부인의 취임식 드레스는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되어 영구 보존되는 전통이 있다.[8] 재클린 케네디의 우아한 스타일은 케네디 왕조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미셸 오바마는 신진 디자이너와 대중적인 브랜드의 의상을 적절히 섞어 입는 '패션 외교'를 통해 친근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모델 출신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하이엔드 패션을 주로 소화하며 공식 석상에서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판과 논란

영부인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국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헌법상 아무런 권한이 없는 배우자가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개입하거나, 인사 문제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침실 내각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또한 영부인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인 내조와 육아를 기대하는 보수적인 시각과, 전문성을 갖춘 현대 여성으로서의 활동을 기대하는 진보적인 시각 사이에서 역할 갈등을 겪기도 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지나치게 정책에 깊이 관여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으며, 반대로 소극적인 활동을 보이는 영부인은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등 대중의 이중적인 기대가 공존하는 자리이다.

전직 영부인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전직 영부인들은 작가, 연설가, 사회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대부분의 영부인은 백악관 시절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을 출판하는데, 이는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높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또한 남편과 함께 대통령 도서관 건립과 운영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여 공익 활동을 지속한다. 힐러리 클린턴과 같이 연방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독자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는 사례도 존재한다. 가장 최근의 전직 영부인인 질 바이든은 백악관을 떠난 후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암 예방 활동 등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9]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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