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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스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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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스 신전은 레바논 베카 계곡의 바알베크 유적지의 일부이다.[1] 바쿠스 신전은 재정 시대 로마 건축의 고고학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적지로 여겨지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1] 바쿠스 신에게 헌정된 이 기념물은 보존 상태가 가장 좋고 규모 면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하는 로마 신전 중 하나이며, 세워진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곳의 뛰어난 장식은 서기 2세기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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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쿠스 신전은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재위 서기 138년~161년)의 의뢰를 받아 세워졌을 것이다. 4세기 그리스의 정복 시점까지 어떠한 정보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가, 그 시점에 이 신전은 후대 로마 제국의 이교도 박해로 인해 폐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전 단지가 완전히 황폐화 되었을 때, 바쿠스 신전은 다른 바알베크 유적지의 잔해들로 보호되었을 것이다.
1898년–1903년에 들어서야 독일 탐사대가 거대한 신전 두 곳을 발굴하고 나서야 이 지역에 대한 복원이 시작되었다.[2] 1920년, 대레바논이 선포되면서, 레바논 정부는 해당 유적에 대한 보호와 보수 작업을 의무화하였다.
1970년대 중반 레바논 내전이 발발했고 베카 계곡 일대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측의 근거지가 됨에 따라 바알베크 유적지의 보호는 중단되고 말았다.[3] 1984년, 바알베크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1] 유적지에 대한 보존은 내전 종전이 이뤄지고 1990년대에 시작됐다.
독일 고고학 협회의 오리엔트 부서가 바쿠스 신전 및 바알베크 신전 단지에 대한 다수 발굴 및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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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바쿠스 신전의 크기는 세로 66 m, 가로 35 m, 높이 31 m로, 유피테르 신전보다 살짝 작다.[5] 신전에 설치된 포디움은 동-서 축에 놓여 있다. 주변부 벽면은 이오니아식 주초를 갖춘 42개의 홈이 없는 코린토스식 기둥 주랑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중 19개가 현재도 서 있는 채 남아 있다. 각 단에는 8개, 각 측면에는 15개의 기둥이 늘어서 있으며, 높이는 거의 20 m (66 ft)에 달한다. 이 기둥들은 아마도 거칠게 다듬어진 상태로 먼저 세운 뒤, 그 자리에서 둥글게 다듬고, 연마하고,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기둥들은 정교하게 조각된 엔타블러처를 받치고 있는데, 이 엔타블레이처에는 세 줄의 띠로 이루어진 프리즈가 있는 아키트레이브가 포함되어 있으며, 프리즈는 황소와 사자가 번갈아 나타나는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코니스는 기하학적·식물 모티프의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안쪽으로 켈라는 양측에 두 층으로 배열된 벽감들을 중심으로, 그 양옆을 코린토스식 필라스터가 장식하고 있다. 난간은 춤추는 마이나스 부조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는 이 신전을 바쿠스에게 봉헌된 것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건물 내부는 길이 30m 신랑과 그보다 2m 높게 조성된 단 위에 놓인 길이 11m 아디툼 또는 성소로 나뉘며,[6] 앞쪽에는 13개의 계단이 놓여 있다.
신전 입구는 16세기 말에 보존 처리되었으나, 린텔의 쐐기돌이 1759년 근동 지진으로 2 ft (1 m) 내려가게 되었는데 1860년대 또는 70년대에 이 쐐기돌을 지지할 벽돌 기둥이 세워졌다. 지진은 또한 소핏 근처 부분의 유명한 독수리 비문도 손상을 입혔으며,[7] 이 부분은 쐐기돌을 떠받치던 기둥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7] 일부 옛 로마 시대 주화는 유피테르 신전과 더불어 이 신전의 구조를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8]
바쿠스 신전은 고대 때부터 남아있는 뛰어난 부조와 조각들로 둘러싸여 있다.[9] 페리스타일 안에는 네 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 조각은 응애를 묘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건축물에 나타난 진드기류에 대한 최초의 식별 가능한 표현이 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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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유피테르 신전 (바알베크)
갤러리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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