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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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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朴楣, 1433년 9월 24일 ~ 1491년 5월 16일[1])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첨(子瞻)[1], 호는 존성재(存誠齋)[1]이다. 박중손(朴仲孫)의 차남이다.
생애
1458년(세조 4) 직장(直長)으로 재직 중 문과에 급제했으며[2], 이듬해 정언(正言)으로 임명되었다.
1469년(예종 원년) 『세조실록』의 찬수관(纂修官) 중 한 명이 되었으며[3], 이후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 군자감정(軍資監正), 이천부사(利川府使), 광주목사(光州牧使)를 거쳤다.
1489년(성종 20) 5월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임명되었으며, 8월 좌부승지(左副承旨)를 거쳐 12월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이르렀다.
이듬해 이지(李持)·김극검(金克儉)·조지(趙祉)·박제순(朴悌順)·양자유(楊子由) 등 5명을 천거했으며[4], 1491년(성종 22) 졸했다. 향년 59세.[1]
가족 관계
※『박중손 비명』과 『박미 처 강씨 묘지명』을 참고했다.
- 증조 - 박강생(朴剛生, 1369년 ~ 1422년) : 안변부사(安邊府使), 증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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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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