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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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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용(朴哲用, 1926년 7월 25일 ~ 1950년 7월 추정)은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한국 전쟁 당시 수도사단 제18연대 제1대대장(소령)으로 참전하였다. 서울 함락 이후 남하하는 북한군에 맞서 수도권과 충청도 일대에서 방어 작전을 지휘하였으며, 1950년 청주 전투 성무봉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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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박철용은 1926년 7월 25일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읍에서 박봉조와 남영일 사이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박씨이며, 1948년 청주지방법원을 통해 사룡에서 철용으로 개명을 하였다.2 한국 전쟁 발발 당시 계급은 소령으로, 수도사단 제18연대 제1대대장에 임명되었다. 전쟁 발발 당시 그는 미혼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고향땅 청주전투에서 전사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훈
한국 전쟁 참전
수도권 방어
1950년 6월 28일 한강 방어선이 붕괴한 뒤, 박철용 소령이 지휘하의 혼성 수도사단 예하 18연대 제1대대는 신사동–과천 전투 (7월 3일)에 투입되어 남태령 우면산 관악산 일대에서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이는 서울 남하를 늦추는데 기여하였다. 이어서 그와 그의 대대는 한강 남안 방어선 전투 (7월 4일)에 참여하여 영등포–김포가도 축선에서 도하 저지와 기동 방어를 수행하였다.
충청권 전투
서울 후퇴 이후 18연대 제1대대는 시흥–안양–수원 전투(7월 4일)에서 도시·도로 축선을 따라 축차 방어를 전개하며 후속 전열 정비 시간을 벌었다. 이후 진천 전투(7월 10일)에서는 북한군 제2사단의 공세를 저지하고 청주 전투로 이어지는 시간을 확보하였다.
7월 중순에는 청주 전투(7월 14일~7월 16일)에 참전하여 청주 북서 고지군을 방어하고 국지적 반격을 수행하였다. 최종적으로 보은 집결을 위한 철수 작전을 엄호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전투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문주리 성무봉 일대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박철용 소령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성무봉 일대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투 공적
사망 및 추모
박철용 소령은 1950년 7월 청주 성무봉 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식 사망 신고는 1957년 12월 12일에 이루어졌다. 당시 향년 24세였다. 전투의 치열함으로 인해 유해는 수습되지 못했고 묘소도 마련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호국원이나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으나, 다행이 지역사와 전사 편찬 자료를 통해 그의 공적은 남아 있다.
주석
- 《한국전쟁사》3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1981)
- 청주지방법원 개명 기록, 1948년.
- 신사동–과천 전투
- 한강 방어선 전투
- 시흥·안양·수원 전투
- 진천전투
- 청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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