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와 인도는 4,096-킬로미터-long (2,545mi) 길이의 국제 국경을 공유하며, 이는 세계에서 6번째로 긴 육상 국경이다.[note 1] 여기에는 아삼주의 262km (163mi), 트리푸라주의 856km (532mi), 미조람주의 318km (198mi), 메갈라야주의 443km (275mi), 서벵골주의 2,217km (1,378mi)가 포함된다.[1]마이멘싱주, 쿨나주, 라지샤히주, 랑푸르주, 실렛주, 치타공주의 방글라데시 주들이 이 국경을 따라 위치해 있다. 수많은 기둥들이 두 국가 간의 국경을 표시하고 있다. 국경의 작은 구획들은 양쪽에 울타리가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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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방글라데시-인도 국경 1273번 표지
래드클리프 선은 인도의 분할에 따라 인도 자치령과 파키스탄 자치령 간의 국경 경계선으로 1947년 8월 17일 발표되었다. 이 선은 국경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종교적 기준으로 8천 8백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450,000 제곱킬로미터 (175,000mi2)의 영토를 공정하게 분할하는 임무를 맡았던 설계자 시릴 래드클리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2] 이는 벵골 지역의 분할을 포함했으며, 이로 인해 동벵골이 파키스탄으로 넘어갔고,[3] 동벵골은 훗날 1971년 해방되어 방글라데시가 인도 공화국과 동일한 선을 국경으로 계속 공유하게 되었다.
문제
요약
관점
Deaths along the Bangladesh–India border, 2001 Bangladesh–India border clashes 및 Bangladesh–India relations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70년대 국경 분쟁
1970년대, 동파키스탄 해방군과 연합군인 인도 육군이 벨로니아 불지 전투에서 승리한 지 여러 해가 지난 후 국경을 따라 여러 차례의 충돌이 발생했다.[4][5]틀:Relevance inline 벨로니아 문제는 1974년 인디라 간디와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 분수령의 일반 원칙에 합의하면서 거의 해결될 뻔했다. 모든 하천 경계의 경우 중류가 국경으로 간주되며, 양측은 강이 경로를 변경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해결되지 않았다.[6]
합동 국경 위원회는 11월 첫째 주에 만나 인디라-무지브 협정의 틀 내에서 벨로니아 국경을 확정하기로 했다. 양국 관리들은 국기 회의를 가졌다.[6] 그러나 1975년 8월 15일,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은 일당 독재 체제를 수립한 후 가족과 함께 살해되었고,[7] 1977년에는 지아우르 라만이 방글라데시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인디라 간디 역시 같은 해 1977년 인도 총선에서 패배했다.틀:Relevance inline 1979년 10월, 방글라데시는 해당 지역이 무인지대로 간주되어야 하며 인도 측 농부들이 무인지대에서 수확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 측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인도 농민들은 자신들이 심었던 벼를 수확하기 시작했다.[6]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와 국경 보안군은 11월 초에 서로 총격을 주고받아 양측 간의 격렬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8]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와 인도 국경 보안군은 1979년 11월부터 12월까지 코밀라-트리푸라주 국경 근처에서 계속해서 교전했다.[6][9] 총격전은 양측 병사들에게 습관이 된 것처럼 보였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합동 조사팀은 해당 지역을 방문하여 분쟁 지역 상공을 90분 동안 날아다니는 총알을 목격했다.[9]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6]
3일간의 회담 후, 양국 대표단은 짧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양측은 트리푸라-코밀라 국경의 벨로니아 섹터 무후리차르 지역에서 정상 상태로 돌아가도록 최대의 자제를 행사하고 도발을 피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단순히 양측이 분쟁 중인 44에이커의 땅에서 총격전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총격전은 끝났지만, 회담은 나중에 결렬되었다.
1979년 사건 이후의 충돌
벨로니아에서의 충돌은 1985년에도 발생했으며,[8] 이 격렬한 충돌에서는 강력한 박격포가 사용되었다.[10] 벨로니아 근처와 벨로니아에서 충돌은 1999년에도 발생했으며,[11] BSF 대원 1명을 포함하여 6명의 민간인이 부상을 입었다.[10][12] 무후리차르의 67.31에이커의 땅은 1974년부터 인도와 방글라데시 양측이 경작 가능한 땅이라고 주장하며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다. 그 중 44.87에이커는 인도 영토에 속하고 나머지는 방글라데시 통제 하에 있다.
총 1979년부터 1999년까지 무후리차르에서 8번의 충돌이 있었다.[13]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와 인도 국경 보안군은 20년간 총 58일간 충돌했다.
밀수
이 국경은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가축, 식품, 의약품, 마약 등을 밀수하는 경로로 사용된다. 또한,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불법 이민자들이 국경을 넘는다.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 수가 많기 때문에 인도 국경 순찰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즉각 사살 정책을 시행해왔다.[14][15][16] 이 정책은 불법 이민자들과 인도 군인들 간의 폭력 보고에 따라 시작되었다.[17] 국경에서는 또한 인도 국경 보안군(BSF)과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BGB) 사이에 때때로 충돌이 발생했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01년에 있었다.
울타리 건설
2009년 7월, 채널 4 뉴스는 인도-방글라데시 국경 울타리 건설 중 수백 명의 인도인과 방글라데시인이 BSF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보도했다. BSF는 울타리의 주요 목적이 불법 이민을 막고 국경을 넘는 테러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18] 2010년,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BSF가 저지른 여러 학대를 기록한 81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학대 피해자, 목격자, BSF 대원, 그리고 방글라데시 측의 BGB 대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다. 보고서는 21세기 첫 10년 동안 900명 이상의 방글라데시 시민이 살해되었으며, 이들 중 다수는 가축 절도나 기타 밀수 활동을 위해 국경을 넘었지만, 일부는 "국경을 넘는 무차별 사격"으로 인해 살해되었다고 지적했다. HRW는 양국 정부가 공동 독립 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19]
BSF 침입 의혹
실렛 타마빌의 조인타 힐 리조트에 있는 방글라데시-인도 국경의 방글라데시 라스트 하우스
방글라데시 정부는 종종 BSF가 방글라데시 영토를 침범하고 인도-방글라데시 국경을 따라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다고 비난해왔다. 2008년 8월 뉴스 콘퍼런스에서 인도 BSF 관리들은 지난 6개월 동안 국경을 넘으려던 불법 이민자 59명(방글라데시인 34명, 인도인 21명, 신원 미상 4명)을 사살했다고 인정했다.[20] 방글라데시 언론은 2010년 BSF가 방글라데시 타쿠르가온구의 하리푸르 우파질라에서 8세에서 15세 사이의 방글라데시 어린이 5명을 납치했다고 비난했다. 어린이들은 국경 근처에서 물고기 잡이 그물을 설치하고 있었다.[21] 2010년, 휴먼 라이츠 워치는 국경 보안군이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2011년 1월 7일, BSF 병력은 15세 소녀 펠라니 하툰이 방글라데시로 돌아가기 위해 국경 울타리를 넘다 엉켜 붙자 그녀를 살해했다. 그녀의 시신은 울타리에 매달린 채 사진이 찍혀 광범위한 분노를 샀다.[22]
2019년, 방글라데시 국경 수비대는 BSF 요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그들은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BSF 장교 한 명이 사망했다.[23]
2015년까지 국경 양측에 약 200개의 월경지와 역월경지(월경지)가 존재했다. 양국 국경을 따라 이어지던 월경지(벵골어: ছিটমহল)는 이 지역의 오랜 특징이었다. 이 월경지는 수세기 전 쿠치베하르 라자와 랑푸르 마하라자 사이의 고액 카드 게임이나 체스 게임의 일부였거나, 쿠치베하르 왕국과 무굴 제국 간의 조약의 혼란스러운 결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인도의 분할 이후, 쿠치베하르 지구는 인도에 합병되었고 랑푸르는 당시 동파키스탄으로 넘어갔으며, 동파키스탄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총리는 1974년 육상 국경 협정을 체결하여 모든 월경지를 교환하고 국제 국경을 단순화하기로 했다. 1974년 방글라데시는 제안된 육상 국경 협정을 승인했지만, 인도는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2011년 양국은 월경지와 불리한 소유권을 교환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개정된 협정은 인도 의회가 2015년 5월 7일 인도 헌법 제100차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최종적으로 양국에 의해 채택되었다.[25][26]
방글라데시 본토 내부에는 111개의 인도 월경지(17,160.63 에이커 (69.4466km2))가 있었고, 인도 본토 내부에는 51개의 방글라데시 월경지(7,110.02 에이커 (28.7732km2))가 있었다. 육상 국경 협정에 따라 월경지 주민들은 현재 거주지에 계속 거주하거나 원하는 국가로 이주할 수 있었다.[27][28] 보라이바리의 불리한 점유는 방글라데시로 넘어갔다.[29] 다이카타-두마바리, 무후리차르(무후리강의 섬),[26] 그리고 피르디와와 관련하여 양국 간의 미확정 국경도 마침내 해결되었다.[30][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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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경계
Exclusive economic zone of India 및 Exclusive economic zone of Bangladesh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해상 경계와 배타적 경제 수역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지고 1974년부터 8차례의 양자 협상을 벌였지만, 2009년 UNCLOS에 따른 중재에 동의하기 전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2014년 7월 7일, 상설중재법원이 방글라데시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고, 양측은 이를 원만하게 수용하여 분쟁이 종식되었다.[33] 분쟁에는 1970년 1970년 볼라 사이클론 이후 섬으로 나타났다가 2010년 3월경 사라진 무인 해양 모래톱인 남 탈파티(뉴 무어라고도 함)도 포함되었다.[34][35]
국경 교통
요약
관점
타마빌(방글라데시)과 다우키(인도) 국경 사이에 있는 인도-방글라데시 우정의 문.
이 부분의 본문은 Transport between India and Bangladesh, Designated border crossings of India 및 Borders of India입니다.
도로 연결 및 공식 건널목
지정된 통합 검문소(ICP, 세관 및 출입국 시설 모두 갖춤) 및 육상 세관(LCS)은 다음과 같다.[36]
인도와 방글라데시 간의 교통은 43년 동안 지상 교통 연결이 없었던 양국에 역사적,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1947년 벵골과 인도의 분할로 시작되었다.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방글라데시가 수립되면서 양국 관계는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양국 정부는 1980년 교통 연결 개선 협정 이행에 더디게 움직였다.[38]
콜카타–다카 버스 서비스는 1999년에 시작되었다.[39] 2001년에는 아가르탈라와 다카를 연결하는 또 다른 버스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아가르탈라는 동쪽으로 방글라데시와 접하는 북동인도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인도 트리푸라주의 주도이다. 2015년 6월, 콜카타에서 아가르탈라로 가는 직행 버스 서비스가 페트라폴, 다카, 아카우라를 경유하여 시작되었다. 이 서비스는 서벵골 지상 교통 공사에서 운영한다.
인도-방글라데시 철도 연결
인도-방글라데시 기존 철도 연결 및 북동부 철도 연결 프로젝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분할 이전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다수의 철도 연결선을 가지고 있었다. 21세기에는 양국은 서부 방글라데시 국경의 철도 연결선으로만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철도 연결선 일부를 재건할 계획이 있다. 콜카타와 방글라데시 사이에는 마이트리 익스프레스와 반단 익스프레스라는 2개의 정기 여객 열차가 운행된다. 미탈리 익스프레스는 틀:Rws와 북벵골의 틀:Rws 사이를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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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장벽
서방글라데시의 힐리 국경역 근처 국경 울타리
이웃 국가와의 인도 국경 장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방글라데시와 총 4,096.70 킬로미터 (2,545.57mi) 길이의 국제 국경 중, 인도 정부는 2024년까지 3,180 킬로미터 (1,980mi)를 완전히 울타리로 둘러쳤으며, 나머지 916 킬로미터 (569mi)는 울창한 숲이 우거진 험준한 산, 강변 및 습지 지역으로 인해 전체 국경을 울타리로 막는 것이 불가능하여 물리적 및 비물리적 장벽으로 덮여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 및 미얀마와의 국경에도 유사한 울타리를 가지고 있다.[40]
인도-방글라데시 국경을 따라 승인된 울타리 길이는 2018년 3,326.14 킬로미터 (2,066.77mi)였으며,[41] 그 중 일부 구간은 점진적으로 건설되었다. 예를 들어 2007년 11월까지 2,529 킬로미터 (1,571mi),[42] 2009년 10월까지 2,649 킬로미터 (1,646mi),[43] 2011년 3월까지 2,735 킬로미터 (1,699mi),[44] 2018년 2월까지 2,746.44 킬로미터 (1,706.56mi),[41] 2019년 7월까지 2,803.013 킬로미터 (1,741.712mi), 2021년 8월까지 3,141 킬로미터 (1,952mi),[41][45][46] 그리고 2024년까지 3,180 킬로미터 (1,980mi)이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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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수비대
BSF 캠프 근처 인도-방글라데시 국경의 모습.
국경 보안군(BSF)은 파키스탄 및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에서 인도의 국경 수비 조직이다.[47][48]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BGB), 이전 명칭 방글라데시 라이플스(BDR)는 방글라데시의 인도 및 미얀마와의 4,427 킬로미터 (2,751mi) 길이 국경 보안을 담당하는 준군사 조직이다.[49][50][51][52]
국경 의식
이웃 국가와의 인도 국경 의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도-방글라데시 국경 통과 지점의 베나폴-페트라폴 국경 의식은 매일 오후 6시에 양국 군대가 공동으로 거행하는 퇴역식 국기 의식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다.[53][54] 특별 허가나 입장권은 필요하지 않다. 인도는 다른 국가들과도 유사한 국경 의식을 거행한다.
국경 시장
인도의 국경 시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도-방글라데시 국경에는 매주 하루 열리는 수많은 국경 시장(하아트)이 있다.[55][56][57][58][59] 이곳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일용품을 구매하는 시장일 뿐만 아니라, 국제 국경 양쪽에 사는 가족들을 위한 재회의 장소이기도 하다.[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