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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우

대한민국의 축구아 (1956-2011)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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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우(裴鍾佑, 1956년 1월 26일 ~ 2011년 9월 11일)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선수와 지도자 시절을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에서 보내며 원클럽맨으로 활약하였고,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팀을 내셔널리그의 강호로 성장시켰다고 평가되었다.[1]

간략 정보 배종우 (裴鍾佑), 개인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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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출신으로 함양초등학교, 함양중학교, 진주고등학교에서 활약했으며,[2] 1975년 한국전력 축구단에 입단하였다.[3] 이후 그 해 열린 197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선수 선발 대회에 '실업 선발팀'의 일원으로 출전해 '고교 홍군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선보였으나 최종적으로 선발되지 못했으며,[4][5] 1977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당시 경희대학교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으나 팀은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6] 그 뒤 1982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성무 축구단을 상대로 2득점을 올린 뒤 서울신탁은행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는 등 팀의 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으나,[7][8] 서울시청 축구단과의 결승전에서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팀은 우승에 실패하였다.[9] 그리고 같은 해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는 총 5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으며,[10] 1984년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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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트레이너 및 주무, 코치로 활동했으며, 한국전력공사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분사해 팀이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으로 개편된 이후인 2002년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06년 배종우가 구단 측에 건의한 연봉 책정 시스템의 변경 및 선수단 정원 증대 방안이 받아들여져 팀의 전력을 강화시키는 데 공헌했으며, 2008년 팀의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견인하며 팀의 개편 이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11][12] 그 뒤 2010년 팀의 사상 첫 내셔널리그 전기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나,[13][14] 후기 리그 개막 이후 건강 악화로 인해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되어 수석 코치인 어용국이 팀의 감독을 대행하였다.[15][16][17] 또한 수원시청 축구단과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1차전에서도 건강 문제로 경기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팀은 0-2로 패했고,[18] 2차전에서는 경기에 참가해 팀의 1-0 승리를 지휘했으나 1, 2차전 합산 결과 1-2로 정규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였다.[19] 그리고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고기구를 주축으로 팀을 재구축했으며,[20][21] 그 해 5월경까지 팀의 감독 역할을 수행하며 경기에 나섰다.[22][23] 하지만 4월 2일 벌어진 천안시청 축구단과의 경기 도중 주심의 판정에 지나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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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2011년 9월 11일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25] 이후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선수들은 9월 16일 있었던 용인시청 축구단과의 내셔널리그 경기에서 검은 완장을 차고 나오며 조의를 표했다.[26]

이후 2011년 내셔널리그 시상식에서 특별 공로패가 수여되었다.[27]

기타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활약하던 시절 서울산업대학 교육학과에 진학해 학업 활동을 병행하였다.[28]

1980년 한국전력공사에서 시행한 '축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유소년 축구지원사업'에 모교인 함양초등학교를 추천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함양초등학교가 지원대상 학교로 선정되었다.

선수 및 지도자 기록

선수

지도자

수상 경력

선수

감독

개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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