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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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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대호(Byun Dae-ho)는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외교관 출신 국제정치학자로, 주크로아티아 대한민국 초대 상주 대사와 재외공관 근무, 북한 대외정책 연구를 통해 외교 실무와 학문을 함께 다루어 온 인물이다.[1][2] 그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북한의 대외정책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였으며,[1][3] 이를 수정·보완해 단행본 『North Korea's Foreign Policy: The Juche Ideology and the Challenge of Gorbachev's New Thinking』을 출간하였다.[4] 외교부 퇴직 이후에는 제주평화연구원 기획조정실장과 제주포럼 사무국장, 한국외교협회 학술정책지 「외교」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외교 현안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다루는 각종 학술·정책 논의를 이끌고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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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생애와 학문적 형성
한국에서 성장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정치외교학적 교육을 받았다.[1]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국제정치이론과 한반도 주변국 외교정책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냉전 말기 동북아 국제질서와 북한의 대외전략에 대한 관심을 심화하였다.[4]
1980년대 초 그는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3] 1990년 'North Korea's foreign policy of "Juche" and the challenge of Gorbachev's new thinking'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다.[3][6] 이 논문은 주체 이데올로기를 외교정책 분석의 중심 변수로 삼으면서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사고'가 북한 외교에 제기한 도전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연구로, 이후 동 논문의 수정본이 1991년 서울 통일연구원(RCPUK)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4][3]
그의 저서는 한국과 해외의 북한 연구에서 북한 외교정책의 이념적 기반과 대제3세계 외교를 설명하는 주요 참고문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고,[7][8] 독일·미국·일본 등에서 간행된 북한 관련 연구서와 논문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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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 공무원 임용과 초창기 근무
박사학위 취득 후 변대호는 대한민국 외무부(현 대한민국 외교부)에 입부해 본부와 재외공관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1] 한국외교협회와 제주포럼이 소개한 이력에 따르면, 그는 외무부 본부 근무 외에도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주스웨덴 대사관, 주루마니아 대사관, 주크로아티아 대한민국 대사관 등 여러 공관에서 근무했다.[1]
초기 외무부 근무 시기 그는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 동유럽 체제 전환이라는 급변 환경 속에서 북한과 주변국의 전략적 계산을 연구해 온 학문적 배경을 실무에 접목하였고, 대러·대유럽 정책 관련 부서와 공관에서 정책 보고와 협의에 관여하였다.[4][3][5]
러시아와 동유럽 공관 근무
모스크바 총영사 시기와 재외동포 정책
2000년대 중반 변대호는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총영사로 근무하였다.[9] 그는 추석을 앞두고 게재한 인사말에서 러시아 내 교민과 여행자의 안전을 강조하며 영사콜센터와 대사관의 24시간 비상근무 체계를 안내하는 등 재외국민 보호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였다.[9]
당시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한국 국적 불법체류자의 법적 지위 개선 문제도 중요한 현안이었다. 조선일보는 2006년 기사에서 주러시아 대사관이 변대호 총영사 등을 중심으로 약 5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 고려인의 체류자격 정비와 법률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10] 변대호는 러시아 고려인 사회의 세대 간 갈등과 경제적 격차, 북·러 접경 지역에서 이동해 온 조선족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며, 법적 지위와 사회통합을 동시에 고려한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10]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는 러시아에서 한류 문화보다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기업의 활동이 한국 이미지 향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가 러시아 수입차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한국 기업의 대러 진출을 외교와 경제가 만나는 접점으로 평가하였다.[11]
남북 외교관의 접촉과 모스크바 한인 사회
동아일보 영어판은 2006년 기사에서 모스크바의 한 식당에서 열린 러시아 한인회의 설맞이 행사에 남북한 외교관이 함께 참석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대한민국 측에서는 김재섭 대사와 변대호 총영사가, 북한 측에서는 윤정규 참사관 등이 참석했다고 전했다.[12] 기사에 따르면 변대호는 행사장에서 북한 측 외교관에게 다가가 함께 건배를 제의했고, 이는 모스크바 동포 사회가 마련한 자리를 계기로 남북 외교관 간 소통이 이루어진 사례였다.[12][13][13]
크로아티아 상주공관과 발칸 지역 의제
요약
관점
상주공관 개설과 초대 상주 대사 부임
대한민국과 크로아티아는 1992년 수교 이후 한동안 주헝가리 대사관이 겸임하는 형태로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2005년 12월 자그레브에 1인 상주공관(대사대리 체제)이 설치되면서 양국 관계가 확대되었다.[14] 공관약사에 따르면 변대호는 2007년 3월 제2대 대사대리로 부임한 뒤, 그해 7월 대사급 공관으로 격상된 주크로아티아 대사관의 초대 상주 대사로 임명되었다.[2][15]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재외공관장 신임장 수여식에서 변대호에게 주크로아티아 대사 신임장을 수여하였다.[16][17][14]
다음은 변대호의 주크로아티아 공관 관련 주요 연혁을 정리한 것이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인식과 정책 기조
변대호는 2007년 외교통상부 누리집에 게재한 기고문 '크로아티아/조선과 "달마시안"의 나라'에서 크로아티아를 중부유럽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소개하며, 리예카 항만 현대화 사업과 정보통신 기술 협력, 관광 및 문화 교류 등에서 양국 협력 잠재력을 강조하였다.[18] 그는 크로아티아 외교장관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의 방한을 계기로 항만·IT·관광·문화 분야 협력이 심화될 수 있다고 보았고, 한국의 대외정책이 강대국뿐 아니라 중견·소국과의 누적된 성과 위에서 구축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18]
2008년에는 주크로아티아 대한민국 대사로서 크로아티아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한국 헌법재판소 설립 20주년 기념행사 초청장을 전달하는 등 사법 분야 교류에도 관여하였다.[19][20] 외교부 보도자료는 크로아티아 대사관 신청사 및 관저 개소식에서 변대호 초대 상주 대사의 부임과 공관 승격이 양국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완성하는 계기로 평가되었다고 전한다.[15]
퇴직 이후에도 그는 크로아티아 관련 문화·교육 행사에 자주 참여하였다. KPI뉴스는 크로아티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을 다룬 기사에서, 크로아티아 초대 상주 대사를 지낸 변대호가 이 소설이 크로아티아의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주제를 균형 있게 다룬다고 평가했다는 점을 전했다.[21][22] 2019년 서울에서 열린 'Croatian Wine Day' 행사에서도 그는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 자격으로 참석해 양국 관계를 언급하였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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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연구와 제주평화연구원의 기획 활동
2010년대 들어 변대호는 제주평화연구원에 합류해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제주포럼 사무국장 및 의제선정위원 등으로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안보 의제를 기획하는 역할을 맡았다.[5][24] 그는 제8회 제주포럼 의제선정위원회에서 기획조정실장 겸 제주포럼 기획단장으로 참여해 정치·외교·안보,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분야 세션을 조정하였다.[25] 그는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 포럼, 제주평화연구원 개원 9주년 세미나 등에서 좌장과 발표자로 참여하며 러시아·동북아 안보, 한반도 비핵화, 해양안보 등 주제를 다루었다.[26][27][28][5]
그는 통일교육원의 '찾아가는 통일교육' 프로그램 등에서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대북 관계', '세계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강연하였다.[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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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사상과 정책 시각
변대호의 박사학위 논문과 저서 『North Korea's Foreign Policy』는 북한의 주체 이데올로기를 단순한 국내 통치 이념이 아니라 외교정책의 핵심 지침으로 파악한다.[4][3] 그는 북한이 주체 이념을 바탕으로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자율성을 추구해 왔으며,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사고'가 제기한 군축·개방 요구를 체제 안전 보장과 어떻게 연계해 해석했는지를 분석하였다.[3][7][7][8] 2018년 동아일보 '중국 살롱' 연재에서 열린 한·러 전문가 토론에서 변대호는 중국군의 북한 주둔 가설에 대해 북한의 자주 외교 노선과 주체사상을 고려할 때 수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이는 오히려 한미 동맹 강화의 명분만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31][31]
학술 활동과 저널 편집
변대호는 외교부 퇴직 후 대학과 학술단체에서 국제정치학 교육·연구에도 참여하였다. 한국외교협회가 발간하는 학술정책지 「외교」 영문판 'Foreign Relations'의 편집위원 명단에는 그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이자 전 크로아티아 대사로 소개되어 있으며,[32] 제주포럼과 Jeju Peace Institute는 그를 한국외교협회 학술정책지 'Diplomacy(「외교」)'의 편집장으로 소개한다.[1][5]
그는 「외교」 지면에서 특집호 서문과 서평 등을 통해 한국 외교정책, 동북아 안보, 국제정치학 방법론 등을 다루었다.[33] 또한 2024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IMEMO에서 열린 Korea-Russia Dialogue 토론회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외교협회 외교 학술지 편집장 및 전 대사로 소개되며, 한러 관계와 북핵 문제를 주제로 한 패널 토론에 참여하였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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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변대호 (1990), 「북한의 대외정책: 주체 이데올로기와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사고의 도전 (North Korea's Foreign Policy: The Juche Ideology and the Challenge of Gorbachev's New Thinking)」, 박사학위논문, 마이애미 대학교.[3]
- 이 논문은 북한 외교정책을 주체 이데올로기의 실천적 표현으로 보고, 이념이 실제 정책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연구자는 냉전 구조와 사회주의권 내부 변화라는 두 가지 환경 속에서 북한이 어떻게 자율성을 유지하려 했는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문헌 연구와 외교문서 분석을 사용해 북한의 공식 입장과 실제 행동을 비교한다. 또 소련의 '새로운 사고'가 북한에 제시한 군축·개방 요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사례별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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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외무부(현 외교부) 근무, 본부 및 재외공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1]
-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주스웨덴 대사관, 주루마니아 대사관 등 동유럽·북유럽 지역 공관 근무.[1]
- 2000년대 중반: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총영사, 재외동포 보호 및 한·러 관계 관련 업무 담당.[9][13][10]
- 2007년 3월: 주크로아티아 대한민국 대사관 제2대 대사대리 부임.[2]
- 2007년 12월~2010년 3월: 주크로아티아 대한민국 초대 상주 대사, 공관 승격과 신청사 개소를 주관.[16][14][15]
- 2010년: 외교부에서 퇴직, 조선일보 기사에서 '전 크로아티아 대사'로 소개되며 퇴임 외교관 명단에 포함.[35]
- 2010년대: 제주평화연구원 기획조정실장, 제주포럼 사무국장 및 의제선정위원으로 활동.[5][25][26][27]
- 2010년대: 인천대학교 겸임교수로 국제정치 관련 강의와 연구 수행.[27]
-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 및 한국외교협회 학술정책지 「외교」 편집장.[32][33][1]
- 2020년대: 한국해양전략연구소, Korea-Russia Dialogue 등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관련 세미나·토론에 참가하는 전직 대사로 활동.[36][34]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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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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