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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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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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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 보만정 및 검담서원 묘정비(芙江 保晩亭 및 黔潭書院 廟庭碑)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있는,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강학공간으로 이용했던 정자인 보만정과 후학들이 그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검담서원의 묘정비이다. 2002년 1월 11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1호로 지정[1]되었으나,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에 따라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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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후학들이 그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검담서원의 묘정비와 강학공간으로 이용했던 정자인 보만정이다. 송준길은 조선 효종∼현종 때의 문신으로 예학에 매우 밝았다.

보만정은 원래 현종 10년(1669) 동춘당 송준길이 학문을 연구하며 여생을 마치려고 이곳 검담에 세운 정자이다. 숙종 20년(1694)에 송준길을 기리기 위해 검담서원을 세웠는데, 이 때부터 보만정은 검담서원의 강학공간으로 이용되었다. 고종 8년(1871) 서원이 훼철될 때 함께 없어졌다가 1920년대 초 다시 세워졌다. 보만정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내부에는 방이 있고,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있으며 방의 뒷면에 서고가 있다. 이 서고에는 동춘당 문집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었다.

보만정 앞뜰 가운데에 서 있는 검담서원 묘정비는 받침부분과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영조 42년(1766)에 세워진 것으로 김원행(金元行)이 글을 짓고, 손자의 손자인 송명흠(宋明欽)이 썼다.

보만정은 조선 후기 강학공간으로서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건축적으로는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로 접어드는 과정에서의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묘정비는 검담서원의 내력 및 동춘당 송준길의 일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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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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