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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광주적십자병원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의 폐지된 사립 교육수련병원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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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광주적십자병원(舊 光州赤十字病院, Gwangju Red cross hospital)은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 415에 소재한 옛 병원 터이다.[1] 구 광주적십자병원은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한 옛 병원 건물이다. 1949년 전남도청 인근 금남로2가에서 ‘광주적십자병원’으로 처음 개원하여 이후 현 위치로 이전하였으며,[2] 오랜 기간 지역 공공의료를 담당해왔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계엄군의 진압으로 발생한 다수의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헌혈이 이어진 곳으로서 광주 시민 공동체 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으며[3] 5·18 사적지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4] 이후 적십자병원은 1990년대 중반 경영 악화로 운영을 종료했고, 학교법인 서남학원에 인수되어 한때 서남대학교 부속 남광병원으로 불리며 재운영되었으나 2014년에 결국 폐쇄되었다.[5]

간략 정보 국가,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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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광주적십자병원의 모태는 해방 직후 대한적십자사가 설립한 지역 병원이다. 1949년 전라남도 광주시 금남로에서 처음 문을 열었으며 1954년 현재의 광주 동구 불로동 부지로 이전하였다.[6] 1960년대 중반 현 건물이 준공되었고,[7] 1979년에 종합병원으로 승격되어 지역 거점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하였다.[8] 개원 초기부터 적십자정신에 입각한 공공의료를 제공해왔으나 1990년대에 이르러 재정난을 겪었고,[9] 결국 1995년에 대한적십자사 광주적십자병원으로서의 운영을 종료하였다. 1996년 학교법인 서남학원이 이 병원을 인수하여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남광병원으로 개편하였으며,[10] 이후 한때 증축과 운영을 이어가기도 했으나 재단의 부실 운영과 누적 적자로 병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사실상 기능을 잃었다. 결국 2014년을 끝으로 서남대 부속병원이 폐쇄되어 의료 기능이 완전히 중단되었다.[11]

1951년 대한적십자사 광주병원으로 개칭하여 운영되었으며, 6.25 전쟁에 부상자 후송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전쟁 이후 40여년 동안 의료보호 대상자 등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활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12]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 및 폭행으로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부상을 입게 되자, 부상자 진료와 치료에 참여하였다.[13][14] 당시 계엄군의 과격진압으로 인한 최초 사망자인 김경철은 광주적십자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또한 계엄군에 의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진행되며 시민군 및 시민들이 부상을 입고 수혈이 필요하게 되자, 적십자병원 헌혈차가 광주 시내를 돌면서 헌혈을 호소하였다.[15][16] 광주 시민들은 당시 자발적인 헌혈을 통해서 부상자 치료에 일조하였다.[17]

이후 대한적십자사의 운영난으로 인해 서남대학교가 인수하였다. 그러나 2014년 서남대학교의 재정난으로 휴업했으며, 2018년 서남대학교 폐교와 함께 사실상 폐업되었다.[18] 이후 한동안 방치되어있다가, 2020년 7월 광주광역시측에서 예산 88억원을 들여서 매입하고 전면적인 보수를 통해서 5·18사적지로 활용할 예정이다.[19][20] 2025년 5월 3일,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을 실시하였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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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1951년 : 광주적십자병원으로 개원
  • 1996년 : 서남대학교가 인수, 서남대학교 부속병원으로 명칭 변경[22]
  • 2014년 3월 20일 : 재정난으로 인한 휴업
  • 2018년 2월 28일 : 서남대학교 폐고 및 서남대학교 부속병원 폐업
  • 2020년: 광주광역시가 매입
  • 2025년 5월: 임시개방

5·18 민주화운동과의 관계

1980년 5월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발생하였을 당시, 광주적십자병원은 전남도청과 금남로 등 주요 항쟁지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었다.[23]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 병원으로 많은 부상자들이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며, 특히 5월 18일 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씨가 의식불명 상태로 이송된 곳이 바로 적십자병원이었다.[24]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환자 치료에 필요한 혈액이 크게 부족해지자, 병원 측은 헌혈 차량을 동원하여 시내를 돌며 시민들에게 헌혈을 호소하였다. 이에 학생, 시민, 군인 등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아와 팔을 걷고 피를 나누었고, 병원 앞에는 헌혈 희망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25] 당시 의료진과 시민들은 힘을 모아 쏟아지는 부상자들을 돌보았고, 일반 시민들은 간호와 수술 보조, 의약품 조달 등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부족한 의료 인력을 지원하였다.[26] 병원 뒷마당은 임시 시신 안치소가 되어 많은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되기도 했으며, 계엄군이 시내를 드나들며 병원 차량에 사격을 가해 추가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27] 이처럼 광주적십자병원은 5·18 당시 부상자 구조와 치료, 시민들의 헌혈과 봉사가 이뤄진 야전병원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후 민주화운동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로 평가받고 있다.[28]

폐원 이후 및 현재

2014년 폐쇄 이후 옛 광주적십자병원 건물과 부지는 한동안 방치되었다. 2010년대 중반 병원을 운영하던 서남학원이 부실로 학교 폐교 및 법인 해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5·18 관련 단체들과 지역 사회가 역사적 장소의 훼손을 우려하며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29]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여 광주시는 2020년 7월 해당 부지와 건축물을 약 80억 원에 공공 매입하였고,[30] 이후 옛 적십자병원의 보존 및 활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광주시는 관련 전문가와 5·18 단체 인사들로 전담팀(TF)을 구성하여 건물 안전진단, 원형 보존 가능성, 공간 활용 아이디어 등을 논의하였으며,[31] 궁극적으로 이곳을 시민을 위한 역사 교육 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검토 중이다. 다만 건물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와 예산 확보 등의 이유로 구체적인 활용 사업은 다소 지연되고 있다.[32] 2025년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광주시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옛 광주적십자병원 일부를 시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개방하였다.[33] 2025년 5월 3일부터 31일까지 응급실, 1층 복도, 중앙 현관, 뒷마당 등 제한된 구역을 공개하고, "멈춘 공간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로 병원의 역사와 1980년 당시의 부상자 치료·헌혈 관련 기록 사진, 관계자 증언 영상 등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렸다.[34] 이는 2014년 폐쇄 이후 11년 만의 일반 공개로서, 시민들과 방문객들이 병원의 역사적 의미를 체험하고 향후 보존 활용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시는 임시 개방 결과를 토대로 향후 상시 개방 및 시설 활용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자 하고 있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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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및 문화재 지정

옛 광주적십자병원 건물은 지상 3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1965년에 준공되었다.[36] 붉은 벽돌과 회색 몰탈로 마감된 간결한 외관의 이 건물은 1980년 당시 광주 시내에서 가장 접근성이 높은 현대식 병원 건축물로서 활용되었다. 병원 정문 옆에는 5·18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함께 당시 부상자 치료 장면을 형상화한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37] 1998년 1월 12일 이 건물은 5·18 사적지 제11호로 공식 지정되었으며,[38]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이후 여러 차례 보존 여론이 제기되었다. 다만 건물 자체는 등록문화재와 같은 범주의 지정은 받지 않은 채 5·18 사적지로서만 보호되고 있으며, 2020년대 초 민간 개발 압력 속에 원형 보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39] 현재 광주시는 옛 적십자병원 건물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리모델링을 통해 역사교육과 문화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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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매체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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