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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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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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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성(舒川邑城)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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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흙으로 쌓아 만든 서천읍성은 한 도읍 전체를 둘러싸고 군데군데 문을 만들어 바깥과 통하게 만든 성이다. 전설에 의하면 여자 100명이 성을 쌓고 장사 1명이 홍여다리를 짓는 내기를 하였는데, 여자들이 성을 다 쌓고 즐거운 함성을 지를 때 장사가 급히 마지막 돌을 끼워서 똑같이 끝나 무승부가 되었다고 한다.

「서천읍성」은 1438년(세종 20년)에 반포된 <축성신도(築城新圖)>에 따른 ‘계단식 내벽’과, 1443년(세종25년) 이보흠(李甫欽)이 건의한 한양도성의 ‘수직 내벽’ 축조기법이 동시에 확인되는 등 조선 초기 축성정책의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적이기도 하다.[1]

『충청도읍지』 등의 문헌에 따르면 「서천읍성」에는 치성(雉城)이 17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나,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16개소가 대체로 90m의 간격을 두고 설치된 것이 확인되는데, 이는 1433년(세종 15년) 150보 간격(주척환산 155m)으로 설치하도록 한 기준보다 촘촘하게 배치된 형태로, 다른 읍성에서는 찾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등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된다.[1]

이 밖에도, 1451년(문종 1년) 『문종실록』에 성터가 높고 험하여 해자를 파기 어렵다는 기록이 있어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자를 비롯하여 방어용으로 추정되는 1.5~2m 간격의 수혈유구가 확인되는 등 조선 초기의 연해읍성 축성 구조와 변화 과정 등을 살펴 볼 수 있다.[1]

성벽은 둘레 1,645m 중 1,535.5m 잔존(약 93.3%),[1] 높이는 3m로, 현재는 동문터의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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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세종 연간(1438년~1450년 경)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돌로 쌓은 1,645m 규모의 연해읍성(沿海邑城)이다.[2] 연해읍성으로는 드물게 자연 지세를 활용하여 산지(山地)에 축성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읍성 훼철령(1910년)’으로 전국의 읍성이 철거되는 수난 속에서 성 내부의 공해시설(公廨施設, 행정·군사 등의 공무수행에 필요한 시설)은 훼손되었으나, 남문지 주변 등 일부를 제외한 성벽은 대부분이 잘 남아있다.[1]

각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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