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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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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요시미치(宗義方)는 일본 에도 시대 쓰시마 후추번의 5대 번주이다.

간략 정보 시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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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덴나(天和) 4년(1684년) 1월 19일에 3대 번주인 요시자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이름 한 글자를 따서 사네우지(真氏, さねうじ)라고 했는데, 쓰시마 후추번의 세자(世子)인 형 요시쓰구(義倫)가 있었으므로 소 씨가 아닌 무라오카(村岡) 성을 사용하였고, 아버지로부터 쓰시마 시모아가타 군에 있는 네오 촌(根緒村)을 영지로 받아서 네오 씨(根緒氏)라 칭하였다. 겐로쿠(元禄) 7년(1694년)에 4대 번주가 된 형 요시쓰구가 요절하는 바람에 그의 양자로써 가독을 이어받고 쓰시마 후추번의 5대 번주가 되었으며 이름도 소 요시미치(宗義方)로 바꾸게 되었다. 무라오카 씨는 셋째 아들 유키타카(如喬, ゆきたか)가 이었다.[1]

그러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거한 아버지 요시자네가 후견인으로써 번의 정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겐로쿠 15년(1702년)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요시미치는 자신의 뜻대로 번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쓰시마 후추번은 대조선 교역 부진과 은광의 산출량 저하로 재정이 악화되고 있었는데, 이를 재건하기 위해 요시미치는 호에이(宝永) 2년(1705년)에 검약령(倹約令)을 내렸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쇼토쿠(正徳) 원년(1711년)에 6대 쇼군(将軍) ・ 도쿠가와 이에노부(徳川家宣)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측의 요청으로 방문한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가 오자 이를 접대하였고 그 공으로 비젠(肥前) 다시로(田代)에 있던 번의 영지를 1,560석 정도 더 받아서 실질 고쿠다카가 1만 3,300석이 되었다.

교호(享保) 3년(1718년) 9월 5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35세. 뒤는 자신의 동생으로 양자로 삼은 우지에 미치노부(氏江方誠, 소 요시노부宗義誠)가 이었다.

조선의 《동사일기》 문견록에는 "도주(島主) 평의방(平義方)는 바로 평의륜(平義倫)의 아우이고 평의진(平義眞)의 서자인데, 주색(酒色)에 빠져 항상 병이 많으며, 성품이 또 혼미하고 용렬한 데다 사무에도 어둡다. 그래서 여러 봉행(奉行)들이 비록 문자(文字)는 모르지만, 역시 단련되고 영리하기 때문에 정령(政令)을 일체 위임하는데 그런대로 모양이 이루어졌다."라고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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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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