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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스케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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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스케모토(少弐 資元, しょうに すけもと)는 일본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의 다이묘(大名)로 쇼니씨(少弐氏) 16대 당주이다.

간략 정보 시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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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조쿄(長享) 3년/엔토쿠(延徳) 원년(1489년) 히젠국(肥前国)의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 쇼니 마사스케의 아들로 태어났다.

메이오(明応) 6년(1497년) 아버지 마사스케와 형 다카쓰네(高経)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추토령을 받은 스오(周防)의 오우치 씨(大内氏)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당시 스케모토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히라타케 스케사다(横岳資貞) 등 옛 신하들에 의해 히젠 미네 군(三根郡)의 니시지마 성(西島城)에서 보호를 받게 되었다. 원복(元服)을 행할 무렵에 분고국(豊後国)의 오토모 마사치카(大友政親)의 후원을 받아[4] 쇼니 씨를 일으켰다.

교로쿠(享禄) 3년(1530년), 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의 명을 받은 지쿠젠 국(筑前国)의 슈고다이(守護代) ・ 스기 오키카즈(杉興運)의 침공을 받았으나 다테나와테 전투(田手畷の戦い)에서 가신 류조지 이에카네(龍造寺家兼) 등의 도움으로 이를 격퇴하였다.[5] 그러나 이로 인해 류조지 씨(龍造寺氏)의 힘이 대두하게 되어 쇼니 씨의 힘은 차츰 쇠퇴하였다. 또한 거듭되는 오우치 씨의 침공에 견디지 못하고 이에카네의 진언을 받아 요시타카와 화의를 맺었다.[6]、그러나 이 화의는 오우치의 모략이었고, 덴분(天文) 4년(1535년) 스케모토는 오우치 씨에게 모든 영지를 넘겨주게 되었다.

덴분 5년(1536년) 다자이노다이니(大宰大弐) 관직을 받은 요시타카는 가신 스에 오키카타(陶興房)에게 스케모토를 공격할 것을 명했고, 스케모토는 가즈미네 성(梶峰城)에서 자결했다.[7] 가즈미네 성은 공교롭게도 아버지 마사쓰네가 자결한 곳이기도 했다.

스케모토의 아들 후유히사(冬尚)는 하스이케 성(蓮池城)의 오타 스케미쓰(小田資光, 마사미쓰政光의 할아버지)에게로 달아나[8] 쇼니 씨의 혈맥을 보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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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자를 받은 인물

  • 에가미 모토타네(江上種) - 에가미 씨(江上氏)로 에가미 다케타네(江上武種)의 숙부에 해당하며, 스케모토의 옹립에 공헌하였다.
  • 오타 모토미쓰(小田光) - 오타 씨(小田氏)로 스케미쓰(資光)의 조부이자 마사미쓰(政光)의 아버지이다.
  • 쇼니 모토모리(少弐盛) - 넷째 아들이다. ※다만 스케모토가 자결했을 때 그는 겨우 한 살이었으며, 원복을 행할 때 죽은 아버지 스케모토의 이름자 한 자를 받았다.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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