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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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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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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stand-up comedy)는 희극 배우(혹은 코미디언)가 관객을 직접 마주하고 무대 위에서 말하기(관찰·풍자·자전적 서사 등)를 중심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희극 형식이다.[1] 공연자는 짧은 농담(비트), 독백 형식의 구성, 정해 둔 레퍼토리와 즉흥을 섞어 빠른 템포로 전달하며, 일부는 소품·음악·마술 등을 활용한다. 공연 공간은 전용 코미디 클럽, 술집, 대학, 극장 등이며, 실연(라이브) 외에도 텔레비전, DVD, 인터넷 등으로 배급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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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장면

관객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공연의 흐름과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공연자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무대에서 리듬과 타이밍을 조절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배우 윌 페럴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어렵고 외롭고 잔인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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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와 형식

대부분의 쇼는 ‘헤드라이너(Headliner) 형식’과 ‘쇼케이스(Showcase) 형식’으로 나뉜다. 헤드라이너 형식에서는 사회자(MC)가 분위기를 띄운 뒤 오프닝·미들 공연자가 각 10~20분 내외로 무대를 가진 후 헤드라이너가 40~60분 가량 마무리한다. 쇼케이스 형식에서는 여러 공연자가 균등한 시간으로 릴레이 무대를 선보이며, 경우에 따라 사회자가 진행을 맡는다. 소규모 장소에서는 아마추어와 신인 중심의 ‘오픈 마이크’가 정기적으로 열려, 신인이 경력을 쌓고 기성 코미디언도 새 소재를 시험한다.

공연 기법(예시)

  • 크라우드 워크(crowd work): 객석과의 즉흥 대화로 웃음을 창출하는 기술. 2020년대에는 SNS·숏폼 영상과 결합해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4]
  • 콜백(callback): 앞서 던진 농담이나 상황을 다시 불러와 추가 웃음을 만드는 구조 장치.[5]
  • 헤클링(heckling): 관객의 방해·야유에 대응하는 기술. 공연 환경이나 객석 구성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진다.[6]
  • 블루 코미디(blue comedy): 금기·성적 표현 등 노골적 주제를 다루는 하위 장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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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요약
관점

영국

18~19세기 영국의 뮤직홀 전통이 스탠드업 코미디의 토양이 되었다. 뮤직홀은 18세기 런던의 선술집·커피하우스 문화에서 발전해 대중적 오락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노래·만담·해프닝을 결합한 버라이어티 무대를 제공했다.[8][9] 영국에서는 오랫동안 체임벌린 경 산하 사무국이 극장 공연을 사전 검열했는데, 1968년 극장법(Theatres Act 1968) 제정으로 검열이 폐지되며 무대 표현의 자유가 크게 확대되었다.[10][11]

1960년대 풍자 붐과 함께 소호의 ‘더 이스타블리시먼트’(The Establishment)와 같은 민간 클럽이 신작 풍자의 시험장이 되었고, 레니 브루스 같은 미국 스탠드업의 강렬한 무대도 이곳에서 영국 관객에게 처음 소개되었다.[12] 1979년 런던에는 미국식 전용 코미디 클럽 ‘더 코미디 스토어’가 문을 열어(돈 워드·피터 로젠가드 공동 설립) 정치적·관찰형 유머를 전면에 내세운 ‘대안 코미디’의 허브가 되었다.[13][14] 이어 1983년 마리아 켐핀스카가 설립한 ‘종글뢰르’(Jongleurs)는 전국 체인으로 확장되며 영국 스탠드업 생태계의 성장에 기여했다.[15][16]

미국

북미의 현대 스탠드업 코미디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보드빌과 영국 뮤직홀, 민스트럴 쇼 및 만담 전통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17] 1950~60년대에는 모트 살(Mort Sahl)이 신문을 들고 시사·정치를 일상어로 풀어내는 스타일을 정착시켰고,[18] 레니 브루스는 사회적 금기와 제도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무대로 여러 차례 외설 혐의 수사를 받으며 표현의 경계를 넓혔다.[19] 1972년 7월 21일 조지 칼린은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서머페스트’에서 〈텔레비전에서 절대 말할 수 없는 일곱 단어〉를 공연한 직후 체포되었으나, 그해 말 사건은 기각되었다.[20][21] 이 사건은 훗날 미국 연방대법원의 FCC 대 퍼시피카 재단(1978) 판례와도 이어지며 방송 외설·품위 규제의 기준을 제시했다.[22][23] 1970~90년대에는 스티브 마틴, 로빈 윌리엄스, 제리 사인펠드, 엘런 드제너러스, 스티븐 라이트 등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투나잇 쇼 등 TV를 발판으로 대형 공연장까지 무대를 넓혔다. 뉴욕의 ‘코미디 셀러’ 등 전용 클럽은 신인 발굴과 검증의 허브로 기능했다.[24]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대 초 KBS 《폭소클럽》 등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스탠드업적 요소가 시도되었고,[25] 2010년대 후반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어/영어 오픈 마이크와 전용 공연이 꾸준히 늘었다.[26] 2024년에는 민간 기획 ‘메타 코미디’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등급제(만 19세 이상) 스탠드업 공연을 운영하는 등 극장·클럽 중심의 시도가 이어졌고,[27][28] 2025년에는 산업적 성장 가능성을 다룬 진단 기사도 등장했다.[29] 영어권 기반 커뮤니티 ‘Stand Up Seoul’ 등은 정기 오픈마이크·쇼케이스로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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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유통·페스티벌

라디오 전성기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시사 독백과 촌극을 섞은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었고, 케이블·프리미엄 채널의 등장은 더 과감한 소재와 길이를 허용했다. HBO는 1970년대 중반 ‘온 로케이션(On Location)’ 시리즈를 통해 로버트 클라인 등 스탠드업 단독 스페셜을 정례화했다.[31] 2000년대 이후에는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이 공연 실황·클립의 주요 유통 경로가 되었고, 2020년대에는 ‘크라우드 워크’ 클립이 SNS에서 확산되며 흥행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32]

최근에는 대형 코미디 페스티벌이 산업의 허브 역할을 한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축제로 매년 8월 에든버러 전역에서 열린다.[33] 호주의 Melbourne International Comedy Festival은 세계 3대 코미디 페스티벌로 꼽힌다.[34] 캐나다 몬트리올의 Just for Laughs는 2024년 파산보호로 한 차례 취소됐으나 재편을 거쳐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35]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Netflix Is a Joke Fest는 2024년에 수백 편 규모의 현장 쇼와 생중계 이벤트를 결합해 대형 코미디 이벤트로 자리잡았다.[36][37]

참고 문헌·읽을거리

  • Fisher, J. Tommy Cooper: Always Leave Them Laughing. ISBN 978-0-00-721511-9.[38]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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