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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마리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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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마리아 아나(독일어: Maria Anna von Spanien) 또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나(스페인어: María Ana de Austria 1606년 8월 18일 ~ 1646년 5월 13일)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황후다.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리타 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형제로는 프랑스 왕비 안 도트리슈,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 등이 있다.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3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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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초기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는 마리아 안나를 자신의 아들 찰스 왕태자(훗날의 찰스 1세)와 결혼시키고자 했다. 찰스 왕태자는 어린 마리아 안나를 만나러 마드리드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영국 역사에서 이 혼담은 Spanish Match라고 알려진다. 하지만 결혼협상은 실패했는데 마리아 안나는 개신교도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고 찰스 역시 가톨릭으로 개종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찰스는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의 딸)와 결혼했다.
마리아 안나는 1631년 2월 20일 이종사촌남동생인 당시 헝가리의 왕 페르디난트 대공과 -미래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결혼한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향했는데 당시엔 30년 전쟁 중이라 위험한 여정이었다. 마리아 안나는 시동생인 레오폴트 빌헬름 주교와 대리혼을 치렀고 그녀가 1631년 1월 26일 트리에스테에 도착했을 때 페르디난트 대공은 빈에서 두 번째 예식을 열었다. 결혼식은 한 달간 축하연이 벌어졌다. 이 결혼은 화목한 걸로 묘사되었다. 마리아 안나는 행복한 기질에 친화적이며 지적인 걸로 묘사되었는데 그녀는 우울한 황제를 잘 달랠 줄 알았다. 그녀는 정치적으로도 활발했는데 남편의 부재중에 섭정 역할도 했으며 여행에 동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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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30년 전쟁 중 황실 일가는 급하게 린츠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마리아 안나는 그녀의 마지막 임신 후 고열과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당시 그녀가 임신했던 딸 마리아는 제왕절개로 태어나 살았지만 곧 죽고 말았다. 마리아 안나와 마리아는 한 관에 함께 묻혔다.
자녀
- 페르디난트(1633~1654)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국왕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1634~1696) 펠리페 4세의 왕비
- 필립 아우구스트(1637~1639)
- 막시밀리안 토마스(1638~1639)
- 레오폴트(1640~1705)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 마리아(1646) 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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