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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겐타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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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겐타로(일본어: 島田 源太郎, 1939년 8월 25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이다. 미야기현 출신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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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미야기현 게센누마 고등학교 시절인 1957년 하계 고시엔 미야기현 예선 준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센다이 제2고등학교에게 패했다. 졸업 후 모리오카 철도 관리국에 입사하기로 정해졌지만 프로 진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58년 다이요 웨일스에 테스트를 통해서 입단했다. 그 해부터 1군에 합류하여 이듬해 1959년 4월에는 첫 선발 등판을 이뤘다. 1960년에는 시즌 개막 후부터 선발 기대주로서 기용됐고 8월 11일 오사카 타이거스전에서 역대 최연소(20세 11개월)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1] 그 해에는 팀내 최다인 41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아키야마 노보루(21승) 다음으로 시즌 19승을 올렸고 구단 사상 첫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2경기에 선발 등판했는데 특히 2차전에서는 승리 투수가 되면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이듬해 1961년에 시즌 9승을 올렸고 그 다음해인 1962년에는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추계 스프링 캠프에서 오른쪽 어깨 통증을 일으켜 오랫동안 침체를 겪어야만 했다. 1967년 10월에는 선발로 복귀하여 두 차례의 완봉승을 기록했지만 그 해 시즌 오프에는 자유 계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가계부를 지참하여 어려운 가정 형편을 호소한 끝에 1년 재계약을 연장했다. 1968년에는 개막 이후 10연승을 기록하는 등 14승 6패와 승률 7할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최고 승률 타이틀을 차지했다.
1970년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고 이듬해인 1971년에 다이요 투수 코치 보좌를 맡고 있었지만 1972년에 돌연 현역에 복귀했다. 현역에 복귀한 1972년에는 완투승을 포함하여 시즌 3승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1973년에 다시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 후 1974년부터 1981년까지 도호쿠 방송과 센다이 방송에서 야구 해설자를 거쳐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롯데 오리온스 2군 투수 코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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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정보
출신 학교
- 미야기현 게센누마 고등학교
선수 경력
- 다이요 웨일스(1958년 ~ 1970년, 1972년 ~ 1973년)
지도자 경력
- 다이요 웨일스 투수 코치(1971년 ~ 1972년)
- 롯데 오리온스 2군 투수 코치(1982년 ~ 1983년)
수상·타이틀 경력
- 최고 승률 : 1회(1968년)
개인 기록
등번호
- 53(1958년)
- 20(1959년 ~ 1971년, 1973년)
- 13(1972년)
- 75(1982년 ~ 1983년)
연도별 투수 성적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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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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