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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멀루에이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에 있는 섬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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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멀루에이섬(인도네시아어: Pulau Simeulue, /sɪməˈluːeɪ/)는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수마트라섬 서해안에서 약 150 km 떨어져 있다. 시멀루에이섬은 인근의 작은 섬을 포함하여 1,754 km2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2010년 인구 조사에서는 80,674명[1]이었고, 2020년 인구 조사에서는 92,865명[2]이다. 2021년 중반 공식 추정 인구는 93,762명이다.[3]
시멀루에이는 한때 서아체군의 일부였으나, 1999년에 분리되어 별도의 시멀루에이 군이 되었다. 군도는 시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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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통계
민족적 관점에서 시멀루에이 주민은 인접한 니아스섬 사람들과 유사하다. 이 섬에서는 두 가지 언어와 여러 방언이 사용되는데, 시멀루에이어와 시굴라이어는 수마트라 북부에서 사용되는 언어와는 다르다.[4] 이 섬 인구의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역사
17세기, 텡쿠 디는 이 섬에 이슬람교를 전파했고, 살루르 마을에 첫 번째 모스크가 세워졌다.[5]
시멀루에이는 역사적으로 유럽 항해사에게 "돼지 섬(Hog Island)"[6]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후추 무역을 위해 수마트라 서해안의 항구를 찾는 선박들의 상륙 지점 역할을 했다. 또한 "풀로 오(Pulo Oo)" 또는 "코코넛 섬(Coconut Island)"으로도 알려졌다.[6] 일부 역사가들은 걸리버 여행기(1726)에 나오는 가상의 섬 릴리푸트와 블레푸스쿠가 인도양에 있는 시멀루에이의 외딴 섬 두 곳, 데바얀과 시굴라이라고 추정한다.
1901년 아체 전쟁 중 네덜란드 식민제국 정부는 시멀루에이섬을 점령했다.[5]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네덜란드는 일본에 항복했고, 시멀루에이섬 주민들로 구성된 연대가 조직되었다.
1904년 지진해일
1907년 1월 4일, 규모 7.5-8의 1907년 수마트라 지진이 시멀루에이섬 서해안 해저를 강타하여 10-15미터 높이의 파도를 일으키는 지진해일이 발생했다.[7] 이 지진해일로 시멀루에이섬 인구의 50% 이상(일부 보고서에서는 70%에 달한다고 함)이 사망했다.
2004년 인도양 지진
시멀루에이섬은 9.3 모멘트 규모의 2004년 12월 26일 지진의 진앙과 가까웠다.
2005년 3월 28일, 섬의 남쪽 끝 바로 앞 진앙에서 8.7 모멘트 규모의 지진인 2005년 니아스-시멀루에이 지진이 발생했다.[8] 지진 동안 시멀루에이섬 서해안은 최소 2미터 (6피트) 상승하여 산호초의 평평한 상단부가 만조 위로 드러났다. 동해안에서는 육지가 침수되어 바닷물이 밭과 주거지를 덮쳤다.[9]
시멀루에이섬은 2004년 지진의 진앙에서 불과 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지진해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 반다아체는 약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시멀루에이에서는 단 7명의 주민만이 사망했고, 나머지 7만 명은 생존했다.[10] 이는 지진해일을 의미하는 현지 지식인 '스몽' 덕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주민에게 전해진 설화가 지진해일 경고 신호를 알려주고 높은 지대로 대피하도록 조언한다.[11][12][1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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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 전통
역사적으로 시멀루에이섬의 사회, 문화, 관습은 구전 전통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조상의 지혜를 따랐다. 이러한 구전 전통에는 난동(케당 또는 바이올린을 이용한 콧노래),[16] 낭가낭가(노래하는 이야기), 마낭가낭가(자장가) 등이 있다.[17] 이러한 전통 덕분에 '스몽'과 같은 이야기가 세대를 거쳐 전해질 수 있었다.[10]
같이 보기
- 시멀루에이어
- 시멀루에 쏙독새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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