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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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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계(新堂洞系)는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의 두 정치인 김종필(金鍾泌)과 박태준(朴泰俊)을 모두 따르거나 지지하는 정치 계파 집단이었다. 친김종필계(親金鍾泌系)나 친박태준계(親朴泰俊系)라는 이름으로도 지칭되었다.


대체적으로는 지난 31년 남짓이던 1969년경부터 2000년경까지 김종필·박태준 훗날 각각 역대 두 국무총리의 바로 그 당시의 공통적인 거주지였던 주요 장소인 서울 중구 신당동 계파를 이루었었으며, 때때로는 운정계(雲庭系)°청암계(青岩系)°청구계(靑丘系)°청구동계(靑丘洞系)라고도 각기각기로 지칭되었었고, 계파의 밑거름의 전성시대는 대략적으로 1995년 4월 12일경부터 이후 2000년 9월 29일경까지 어언 장장 5년 5개월여간의 그 황금기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신당동계(新堂洞系)는 각각 각자각자의 공통적으로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장성 출신의 역대 다선 국회 의원 역임자이자, 역대 국무 총리 및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지낸 운정 김종필(雲庭 金鍾泌, 1926년 1월 7일~2018년 6월 23일, 육사 8기 출신.)과, 청암 박태준(青岩 朴泰俊, 1927년 10월 24일~2011년 12월 13일, 육사 6기 출신.)이라는 이들 그 둘의 이념 등을 따르는 지지자들이나, 그들의 측근을 지칭하는 대부분 호서 및 영남 지역 관련 성향의 향취가 짙은 중도보수우파 및 자유민주주의 색채의 계파 정치 집단이었다.
신당동계(新堂洞系)는 2000년 9월 29일경부터 그 색채가 바래고 바래졌지만, 1997년 8월경 대선 정국 당시에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와의 DJP 3자 연합 선언과 아울러 같은해 12월에 김대중 후보 당선까지 기록하고 이듬해 1998년 2월 25일에서부터 이후 2001년 9월 3일경까지 3년 7개월여동안 국민의 정부와 연립내각정부 구성 체제에 한몫 하기도 하였다.
김종필·박태준 두 인물은 한때에도 자유민주연합의 신당동계(新堂洞系)의 공동 수장이었지만, 참고로 김종필·박태준 두 전직 국무총리 이 둘은 지난날 모두 각자 각기각기로 대선 후보에 낙마하거나, 혹은 대선 예비 경선 후보에 낙선한 공통점도 각각 있었으며, 이후 제각기로 각각 각자각자 공통적인 자민련 시절의 제11·31대 국무총리 김종필(1926~2018)과 아울러 김종필한테 육사 기수로는 2기수 선배가 되는 제32대 국무총리 박태준(1927~2011)을 비롯한 이외에도 신당동계(新堂洞系)의 대표적인 16인의 인물로는 강창희, 김복동, 김세배, 김용환, 김학원, 박준병, 박찬종, 박형순, 심대평, 유수호, 이완구, 이인제, 이한동, 정몽준, 허문도, 현경자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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