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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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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건(申屠建, ?~25년)은 중국 현한의 관료이며 제후왕이다.
생애
요약
관점
신나라의 대사공을 지낸 최발(崔發)에게서 시경을 배운 적이 있다.[1]
현한 내부에서 대사도 유연의 명망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경시제가 유연을 죽이려고 연 연회에서, 수의어사(繡衣御史)로서 경시제에게 옥결(玉玦)을 들어 결단하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경시제가 실행하지 못했다.[2]
서병대장군(西屛大將軍)이 되어 이송과 함께 무관을 공격했고,[3] 홍농군 석현(현 허난성 시샤현) 사람 등엽·우광이 호응해 무관을 열고 한군을 맞아들이면서 신도건·이송 군은 관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관중 각 현에서 가호(假號)를 일컬은 무리들이 잇달아 봉기하여 장안 공격에 가세해, 마침내 10월 6일(음력 9월 3일)[4] 왕망을 죽여 신나라는 붕괴되었다. 10월 9일에는 이송·등엽·조맹과 함께 장안성에 입성했다. 등엽이 미리 보낸 교위 왕헌이 옥새를 얻었으나 바치지 않고 궁녀들을 끼고 천자의 북과 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이송·등엽·조맹·신도건은 왕헌을 베어 죽이고 왕망의 머리를 완으로 보냈다.[1] 음력 10월, 이송과 함께 황제의 의장과 복식을 보내 천도를 준비했다.
신도건은 최발의 귀순을 받아들였으나, 뒤에 다시 불온한 언설을 퍼뜨리자 승상 유사로 하여금 최발을 참수해 효수하였다. 사심(史諶)·왕연(王延)·왕림(王林)·왕오(王吳)·조굉(趙閎)도 항복하였으나 뒤이어 살해되었다. 또 왕헌(王憲)을 벤 뒤 “삼보 사람들이 교활하여 주군(왕망)을 함께 죽였다”는 유언을 퍼뜨려 관민이 공포에 빠지고 군현들이 둔취하였다. 신도건 등은 이를 진정시키지 못해 경시제에게 보고했고, 경시제가 24년 음력 2월 장안에 이르러 대사면을 내린 뒤에야 삼보가 평정되었다.[1]
24년, 현한에서 왕들을 봉할 때 평씨왕(平氏王)에 봉해졌다.[3]
24년 음력 12월, 적미가 관문을 넘어왔다. 25년, 경시제의 군대가 적미에게 연전연패했다. 하동을 수비하다가 유수의 장수 등우에게 지고 장안으로 달아난 장앙이 함께 장안을 약탈하고 동쪽 남양으로 달아나자는 계획을 말하자, 요담과 함께 동조해 함께 경시제에게 아뢨다. 경시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장안 수비에 나서 조맹·왕광·진목·성단을 신풍에, 이송을 추에 주둔시켰다.[3]
장앙·요담·호은·신도건·외효가 함께 음모를 꾸며 입추일 추루 제사 때 경시제를 협박하기로 했는데, 계획이 새어나가 외효는 경시제가 보낸 등엽의 포위를 뚫고 달아났다.[5] 외효가 오지 않자 경시제는 나머지 넷을 의심해 외려(外廬)에 그대로 있게 했다. 신도건은 나머지 셋이 달아나는데 홀로 있었기에 경시제에게 베여 죽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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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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