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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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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군(薪島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의 행정 구역으로, 1958년 간척 사업으로 만들어진 비단섬 · 황금평 · 서호섬 등 압록강 하구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반도의 극서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간척 사업으로 비단섬에 합쳐진 마안도(馬鞍島)는 한국의 최서단이다.
지리
비단섬(緋緞島, 신도·마안도·무명평 등과 부근의 간석지를 둑으로 연결하여 만든 섬), 황금평(黃金坪: 옛 이름 黃草坪), 서호섬 등 압록강 하구의 하중도(河中島)들을 관할로 하고, 압록강 본류를 사이에 두고 동쪽의 맞은편에 룡천군(龍川郡)이 있다. 서호로동자구와 황금평리의 좌초도 지역은 룡천군에 연륙되었다. 서쪽은 중화인민공화국 요녕성(遼寧省)의 동항시(東港市: 둥강)와 인접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중국의 자본에 의한 금융·경제 특구 개발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역사
《대동여지도》 제8첩 6면
- 조선 전기 : 신도군의 중심 섬인 신도(薪島)를 옛날에는 장자도(獐子島), 전횡도(田橫島)로 불렀으며,[2] 평안도 용천군(龍川郡) 및 용천도호부(龍川都護府)에 속하였음. 세종 때 봉수대가 설치되었음.
- 1682년(숙종 8년) : 용천도호부사(龍川都護府使)와 미곶첨절제사(彌串僉節制使)가 번갈아 수토함.[3]
- 1786년(정조 10년) : 용천부사와 미곶첨사가 1년에 3회 번갈아 수토하는 연삼수토(年三搜討) 시행.
- 1791년(정조 15년) : 횟수를 정하지 않고 임의로 수토하는 수시수토(隨時搜討)로 개편 시행.
- 1807년(순조 7년) 8월 : 평안도 토포사가 신도에서 발생한 중국인 불법 무역 행위를 대거 적발.[4]
- 1807년 12월 : 미곶진(彌串鎭)을 신도로 옮겨 신도진(薪島鎭)을 설치함.[5]
- 1895년(고종 32년) : 신도진 폐지[6]
광복 당시 평안북도 용천군 신도면(薪島面)에 속해 있었다. 1967년에 신도군이 신설되었으나, 2년 뒤 용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에 용천군에서 다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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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갈대가 주요 작물이지만, 어업과 농업 또한 지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곳에서 생산된 갈대는 신의주시의 화학-방직 공장으로 옮겨진다. 굴이 많이 잡히고 수자원이 풍부하다.
행정 구역
광복 당시 용천군 신도면은 동주동(東洲洞), 남주동(南洲洞)의 2개 동(洞)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신도군은 1읍 2구 1리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재
- 북한 천연기념물 제 63호 코끼리바위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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