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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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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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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암(安養庵)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사찰이다.[1] 암(庵)이란 말은 대개 큰 절에 딸린 작은 절집을 뜻하는 말이지만[2] 서울의 안양암은 한 때 대한불교원효종의 총본산이었다.[3] 오랜 재산 다툼이 있었고 2005년 전통사찰로 등록되면서 한국불교 염불정토종의 소속이 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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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좌상

역사

안양암이 있는 낙산 주변은 조선 시대 각족 무속인과 크고 작은 절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5] 안양암은 1889년 조선 왕실의 원찰로 창건되어 성월 이창진이 주지를 맡았다.[6] 안양암의 천오백불전에 있는 소조 좌불(塑造坐佛)의 70% 가량은 왕실에서 시주한 것이다.[4]

1916년 이창진의 아들 이태준이 주지를 승계하였다.[6] 이태준이 안양암을 승계할 당시까지도 안양암은 별도의 종단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사찰이었으나 조선총독부사찰령에 따라 조선의 모든 사찰은 30개의 본사 가운데 하나에 적을 두어야 하게 되었으며[7] 이태준은 주지의 직을 원활히 유지하기 위해 안양암을 봉은사에 적을 둔 암자로 신고하였다. 이는 훗날 대한불교조계종과 재산권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8]

1926년 이태준은 칠성각 등을 짓고 안양암을 크게 중수하였다.[1] 일제강점기 동안 이태준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여는 등 친일 행적을 보인바 있다.[9]

해방 이후 안양암은 다시 이태준의 개인 사찰로 운영되었으나, 1962년 불교재산관리법이 재정되면서 사찰의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10] 5·16 군사 정변 이후 대처승과 비구승 사이의 갈등을 일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이 법은 전국적인 불교내 갈등 격화를 불러왔다.[11] 이런 가운데 1963년 대한불교원효종이 성립되었고 안양암은 원효종 소속 사찰로 등록하였다. 원래 경주의 망월사를 총본산으로 하던 원효종은 이태준이 사망하자 1973년 총본산을 안양암으로 옮겼다.[3]

1983년 조계종은 일제 강점기 시기 안양암이 봉은사의 말사로 등록하였다는 점을 들어 재산권 분쟁을 벌인다. 이 분쟁은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되어 1988년 대법원 판결로서 조계종이 패소하게 되었다.[8] 한편 원효종은 부산의 금수사로 총본산을 다시 이전하면서 안양암의 매각을 의논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종단이 크게 분열하게 되었다.[12] 원효종은 2009년 총무원장 선거 이후 종단이 사실상 붕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가[13] 2016년에 이르러서야 사태를 수습하였다.[14]

2005년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이 안양암을 매입하여 사찰박물관을로 재단장하였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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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안양암은 19세기 한국 불교의 특징을 잘 보전한 암자로 다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조선 말기에 지어져 다른 사찰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정 시기의 불교 관련 유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2005년 사찰 전체를 박물관으로 꾸미고 재개장하였다.[15]

안양암에 있는 주요 문화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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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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