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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두스 마누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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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두스 피우스 마누티우스( /məˈnjuːʃiəs/ ; 이탈리아어 발음: 알도 피오 마누치오; 1449/1452c. – 1515년 2월 6일)은 이탈리아의 인쇄업자이자 인문주의자로, 알디네 출판사(Aldine Press)를 설립했다. 마누티우스는 40대 이후 삶을 희귀 문서의 출판과 보급에 헌신했다. 그리스어 필사본에 대한 관심과 보존 노력을 보였으며, 그리스어 판본을 출판하고 헌신한 당대 혁신적 출판인으로 평가받게 된다.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소형 휴대용 책 형식(옥타보)인 엔키리디아를 도입하여 개인 독서를 혁신했으며, 그 크기는 현대 페이퍼백 책의 전신이 된다. 또한 쉼표와 세미콜론을 포함한 구두점 사용을 표준화하는 데 기여했다.[1]
마누티우스는 그리스어 원전을 출판하고자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나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이 번역을 거치지 않은 원본 그리스어일 때 비로소 진정성을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누티우스 이전에는 표준화된 그리스어 활자를 제작하는 것이 복잡했어서, 출판사가 그리스어로 된 책을 인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누티우스는 희귀본 원고를 그리스어, 라틴어 원본 그대로 출판했다. 그는 당시 휴머니스트체를 닮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활자 제작을 의뢰했는데, 이 활자본은 이탤릭체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알디네 출판사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복제본 또한 증가했다. 마누티우스가 알디네 판본의 불법 복제를 막으려 애썼으나 그의 혁신을 모방한 출판물들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알디네 출판사가 꼼꼼하고 정확한 출판물로 명성이 높아지자, 네덜란드 철학자 에라스무스가 마누티우스를 찾아와 자신이 번역한 아울리스의 이피게네니아를 출판해 달라고 요청했다.
젊은 시절, 마누티우스는 로마에서 인문주의 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그는 조반니 피코와 친구였고, 피코의 조카인 카르피 영주 알베르토 피오와 레오넬로 피오를 가르쳤다. 가정교사로 일하던 시절 마누티우스는 제자와 그들의 어머니를 위해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 마누티우스는 베네치아에 정착하여 인쇄 출판업자가 되었다. 베네치아에서 안드레아 토레사노를 만나, 두 사람은 알디네 출판사(Aldine Press)를 공동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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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삶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1449~1452년 사이 로마 근교의 바시아노에서 태어났으며,[2][3][4]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유년시절 인문주의 학자가 되기 위해 로마로 가게 되었다. 로마에서 그는 가스파레 다 베로나에게 라틴어를 배웠으며, 1470년대 초 도미치오 칼데리니의 강의를 들었다. 1475년부터 1478년까지 마누티우스는 페라라에서 바티스타 과리노를 스승으로 삼아 그리스어를 공부하였다.[3]
마누티우스의 초기 삶 대부분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존 애딩턴 사이먼즈가 작성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11판에 의하면, 마누티우스는 1480년 3월 8일 그는 자신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카르피의 시민권을 받았다. 1482년, 그는 오랜 친구이자 동문인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함께 이탈리아의 미란돌라에 2년간 머물면서 그리스 문학을 연구했다.[5] 피코는 자신의 조카인 알베르토 피오와 레오넬로 피코의 스승으로 마누티우스를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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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디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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