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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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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904년 송병준과 이용구가 결성한 일진회의 평의원이 되었고, 간사와 총무원 등을 지냈다. 송병준은 러일 전쟁 때 일본군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친일파의 실세가 되었는데, 양재익은 이런 송병준에게 잘 보여 일진회 간부 자리를 얻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한 일본이 일진회 회원들을 등용하면서 1906년 경기도 양주군 군수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에는 충청남도 관찰사로 승진했다.
1909년에는 대한노동회 부총재와 대한측량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일진회 원임총무원 겸 간사를 거쳤고, 일진회가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성사로 목적을 달성하고 해산될 때에는 잔무정리위원을 맡았다. 특히 1909년 말에 일진회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합방청원서〉에 반대하는 홍긍섭 등이 밀려났을 때 이들을 사퇴시키기 위한 임시총회에서 임시회장을 맡은 바 있다.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 사장으로 재직[2] 하기도 했으며, 1911년 일진회가 한일 병합에 세운 공을 기록하기 위해 발간된 책인 《원한국일진회역사(元韓國一進會歷史, 4책 8권)》의 편집위원이었다.
한일 병합 후에 일진회가 해산되었을 때 일본 정부에서 상금 격으로 준 해산금 700원을 수령했으며, 1934년 흑룡회가 세운 일한합방기념탑 석실에 합방 공로자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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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들어 있다.
-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친일단체 부문에도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
참고자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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