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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
조선 말의 무신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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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梁憲洙, 1816년 12월 18일 ~ 1888년 11월 22일)는 조선 말의 무신이었다. 본관은 남원으로 자는 경보(敬甫), 호는 하거(荷居).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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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양공 양성지의 14대손으로 1848년 무과에 급제하여, 1865년 제주목사를 지내며 고을을 잘 다스렸다. 1866년 강화도에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오는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정족산성에 숨어있다가 프랑스 군대가 오자 일제히 공격해 프랑스군을 무찔렀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6명이 전사하고 30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다만 프랑스군 기록에선 병인양요중 프랑스군의 피해는 3명의 전사자와 35명의 부상자로 기록되어있다.
양헌수는 그 뒤 황해도 병마절도사와 어영 대장 등을 지냈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자 결사 반대했다. 1884년 공조판서를 지냈다.
배우자는 정부인(貞夫人) 고성 이씨 무과에 급제한 군수(郡守) 이행검(李行儉)의 딸이다. 자는 약여(約汝). 자녀는 2남을 두었다. 첫째아들 양주현(梁柱賢), 둘째아들 양주겸(梁柱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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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화재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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