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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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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교(永渡橋)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과 중구 황학동을 잇는 청계천의 다리이다.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다리는 1950년 말의 청계천 복개 공사로 없어진 것을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새로 세운 것이다.[1] 현재의 다리는 조선 시대에 있던 다리와 다르게 콘크리트로 지어진 동명의 다리이다.[2]
역사
처음 세워진 시기는 조선 초기로 추정되며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고도 불렸다. 당시의 영도교는 흥인지문을 거쳐 왕십리, 뚝섬, 광나루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했기 때문에 통행량이 많았다.[1] 한편 광희문을 주로 통과해 나오던 장례 행렬은 동망산으로 가기 위해 영도교를 통과했다. 왕족이나 사대부의 장례 행렬은 영도교를 건너 뚝섬이나 광나루를 거쳐 왕릉이나 선산으로 나아갔다.[3] 성종 때는 이 다리를 보수하여 한자명으로 영도교(永渡橋)라고 하였다.[4]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영도교는 서울 외곽의 주요 다리 역할을 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다리를 부수어 궁궐의 석재로 써서 없어졌고 대신 그 자리에 나무로 된 다리가 세워졌다.[1][4] 나무 다리는 가끔 떠내려 갔는지 그 옆에는 개천 바닥에 돌을 띠엄띠엄 놓아서 이것을 밟고 건너게 하기도 했다. 이런 돌을 '띠엄돌'이라고 했다.[5] 조선 시대 영도교의 구조나 형태에 대해서는 현재 알 수 없다.[1]
1933년에는 나무 다리를 헐고 콘크리트로 교체 공사를 했다.[4] 이 콘크리트 다리는 1950년대 말부터 추진된 청계천 복개공사로 없어졌다. 이후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영도교를 새롭게 세웠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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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일화
영도교에는 단종에 얽힌 이야기가 존재한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갈 때 단종비였던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배웅을 나와 이별하였고,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하였다고 하여 영이별다리 · 영영건넌다리라고 불렸다.[4] 이 이야기는 이후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6][7] 또한 이 이야기로 인해 단종이나 정순왕후와 관련된 여러 행사를 영도교에서 진행하기도 한다.[8][9] 종로구는 영도교를 포함한 정순왕후 관련 유적지를 두루 둘러볼 수 있는 '숭인동' 골목길 탐방 코스를 개발하기도 했다.[10]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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