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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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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올리비에 카포-오부(Narcisse-Olivier Kapo-Obou, 1980년 9월 27일, 아비장 ~)는 흔히 올리비에 카포(Olivier Kapo)로 알려진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그의 포지션은 좌측 윙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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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경력
요약
관점
초기 경력
카포는 1999년, 오세르에서 프로데뷔를 하였다. 그는 2004년 여름에 유벤투스로 자유 이적하였으나, 토리노의 생활 적응에 애로를 겪었고, 파벨 네드베트의 좌측 미드필더 백업이었던 그는 자주 출전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그는 2005-06 시즌에 모나코로 임대되었다.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제 강등된 후, 카포는 토리노로 복귀하였으나, 미드필더 자원이 아직도 넘쳤기에 다시 임대를 떠났다. 그는 스페인 라 리가 클럽 레반테와 계약하여 32경기 출전, 5골을 기록하였다.
버밍엄 시티

2007년, 카포는 버밍엄 시티와 £3M에 계약을 성사시켰다.[1] 그는 클럽과 계약하기 위해 다른 제의를 거절하였고, 자신이 잉글랜드 축구에 더 적합하다고 덧붙였다.[2] 그는 첼시와의 2007년 8월 12일 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러 골까지 기록하였으나, 2-3 패배를 막지 못하였다.[3]
위건 애슬레틱
2008년 7월 16일, 카포는 위건 애슬레틱과 £3.5M으로 추정되는 이적료에 3년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스티브 브루스 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4] 2008년 9월 24일, 그는 입스위치 타운과의 풋볼 리그컵 경기에서 위건 1호골을 넣어 팀의 4-1 승리를 도왔고, 첫 리그골은 1-2로 패한 첼시와의 2009년 2월 28일자 경기에서 나왔다.[5] 2010년 1월 8일, 카포는 불로뉴로 6개월간 임대되었고,[6] 같은해 8월에 상호 계약 해지로 위건을 떠났다.[7]
셀틱
2010년 11월 4일, 카포는 셀틱과 18개월 계약을 맺었다.[8] 그는 등번호 77번을 배정받았다.[9] 그는 글래스고 연고의 클럽으로 이적하기 위해 분데스리가 클럽 프라이부르크 등의 클럽들이 제시한 더 나은 대우[10]를 거절했다고 밝혔다.[11] 그는 전 셀틱 선수이자 자신의 지인인 장-노엘 페리에-둠베와의 상의 및 추천을 통해 입단하게 되었다.[9] 카포는 세인트 존스톤과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홈경기에서 후반에 교체로 데뷔하였고, 크로스바를 강타한 후 팀의 2번째 골을 도와 2-0 승리에 일조하였다.[12] 그의 셀틱 계약이 2011년 1월에 종료되어 방출되었는데, 그는 클럽이 일방적으로 계약 조항을 바꾸어 클럽을 떠난 것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하였다.[13]
알-아흘리
2011년 2월, 카포는 카타르 클럽 알-아흘리와 5개월 계약을 맺었다.[14] 그는 3-1로 이긴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2골을 득점해 팀의 2번째 승리를 선사하였다.[15] 겨우 5경기 출장 2골을 기록한 후, 그는 그해 여름에 페르시아만 연고의 클럽과 계약을 해지하였다.
오세르 복귀
레바디아코스
계약 종료 후, 그는 수페르리가 엘라다 클럽 레바디아코스와 2년 계약을 했다.[18]
2014년 9월, 전 레바디아코스 선수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축구는 모든게 부패하였고, 마피아가 지배하나, FIFA와 UEFA는 이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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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경력
카포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경기에 9번 출전하였다.[20] 그는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자국을 대표로 출전해 뉴질랜드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였고,[9] 카메룬과의 결승전에도 교체로 출전해 프랑스의 승리를 도왔다.[21] 그는 이집트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친선경기에서도 득점 기록이 있다.[9] 카포가 출전한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2004년 경기였고, 2010년 11월에 셀틱으로 이적한 이후로 그는 국가대표팀 차출에 대한 꿈을 접었다.[8]
수상
클럽
- 쿠프 드 프랑스: 2002–03
국가대표팀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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