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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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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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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요한 혹은 요한 마르코(그리스어: Ἰωάννης Μᾶρκος 이오아니스 마르코스[*])는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로바르나바의 선교 여행을 돕는 조수로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마르코의 복음서의 저자인 복음사가 마르코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간략 정보 성 요한 마르코, 70인의 제자, 비블로스의 주교 ...

성경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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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예루살렘 구시가성 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시리아어 비문: "이곳은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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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갤버스턴 주교관 밖에 있는 성 마르코의 사자

사도행전에서는 "마르코라 하는 요한" 또는 단순히 "요한"이라는 인물이 여러 번 언급된다:

베드로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사도행전 12:12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의 직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을 데리고 갔다.사도행전 12:25

그들이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요한을 봉사자로 두었다.[2]

바울과 그 일행이 파포스에서 떠나 팜필리아의 페르게에 이르렀을 때, 요한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3]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팜필리아에서 그들을 떠나 사역에 함께하지 않은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들 사이에 다툼이 너무 심하여 서로 갈라섰다. 그래서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배를 타고 갔고,

바울은 실라스를 택하여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맡겨진 채 떠났다.[4]

이 구절들에서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예루살렘에 큰 집을 가지고 있었고,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한 후 그곳으로 피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요한은 바울바르나바키프로스팜필리아 페르게까지의 첫 선교 여행을 도왔지만, 그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바울과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다시 합류시킬지에 대한 문제로 헤어졌고,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돌아갔으며, 그 이후 두 사람의 행적은 사도행전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요한 마르코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와 그 후 바울과 바르나바 사이에 발생한 의견 불일치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었다. 예를 들어, 매튜 헨리는 요한 마르코가 "[바나바와 바울]이 알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났다고 주장했다.[5] 다만, 남아 있는 사료가 부족하여 제시된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 유력한지 단정하기 어렵다.[6]

일부 학자들은 사도행전에서 요한 마르코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루가가 자신의 복음서의 주요 자료로 삼은 마르코 복음서의 추정 저자에 대한 논쟁이라고 주장했다. 아델라 콜린스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루가의 복음서도 썼기 때문에, 이런 비판적 묘사는 두 번째 복음서의 권위를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였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7] 마이클 콕은 "마르코 복음서는 루가와 같은 교육받은 그리스도인의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취향에는 다소 부끄러운 것이었다"고 지적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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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인물 여부

이 시기의 유대인들이 요한(히브리어: 요하난)과 같은 셈족 이름과 마르코(라틴어: 마르쿠스)와 같은 그리스-로마 이름을 모두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9] 그러나 요한은 유대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고,[10] 마르코는 로마 세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11], 요한 마르코를 다른 요한이나 마르코와 동일시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실제로 요한 마르코는 고대 문헌에서 신약성경의 다른 마르코들과 일관되게 구별되고, 비블로스의 주교로 칭해진다.[1][12][13][14] 고대에 요한 마르코는 드물고 명시적인 추측을 제외하고는 다른 요한과 동일시되지 않았다.[13][15][16]

반면 중세 문헌에서는 신약성경에 언급된 모든 마르코를 복음사가 마르코로 간주하는 경향이 커졌고, 많은 현대 학자들도 단일한 마르코로 보는 데 동의했다.[17] 여러 저작에서 단순히 마르코라고만 언급하고 추가적인 설명이 없는 사실 자체가 단일한 마르코를 시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18]

첫째,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가 있는데, 바울은 세 개의 바울 서신 말미에서 그를 "동료 일꾼"으로 언급한다.[19] 고대에는 그를 아폴로니아의 주교로서 별개의 마르코로 간주했다.[14] 만약 이 두 마르코가 동일인물이라면, 이 서신들이 사도행전에서 요한 마르코가 바르나바와 함께 떠난 후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나중에 어떤 화해가 있었음을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두 마르코 모두 바울과 바르나바와의 밀접한 관계를 주목하며, 그 둘이 사실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성경 학자 새뮤얼 롤스 드라이버찰스 브릭스는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를 요한 마르코와 동일시했으며,[20] 존 R. 도나휴와 다니엘 J. 해링턴도 마찬가지이다.[21]

하지만 복음사가 마르코는 교부 전통에서만 알려져 있으며, 베드로와의 관련성만 언급될 뿐 바울과의 연관은 나타나지 않는다.[22] 히에로니무스만이 바울이 언급하는 마르코가 복음사가일 수 있다고 시사한다.[23][24]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베드로가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집으로 피신한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이 오랜 관계를 가졌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25]

반면에 소수의 현대 학자들은 복음사가 요한 또는 장로 요한을 요한 마르코와 동일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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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료

바르나바 행전은 5세기경의 외경으로 추정되는데,[27] 요한 마르코가 기록했다고 주장하며, 키프로스에서의 바르나바의 선교 여행과 순교를 상세히 다루어 사도행전의 기록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어진다.[28]

6세기에 수도사 알렉산드로스가 쓴 '사도 성 바르나바 찬사' 역시 키프로스에서 바르나바와 요한 마르코의 활동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을 제공한다. 이 기록에서 요한 마르코는 복음사가 마르코와 같은 인물로 여겨지며, 바르나바의 죽음 이후 에페소스로 떠나는 것으로 나온다.[1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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