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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리 미치오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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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리 미치오(일본어: 鵜狩 道夫, 1936년 7월 14일 ~ 2018년 8월 27일[1])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이다. 가고시마현 히오키시 출신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현역 시절에는 발음이 동일한 등록명(鵜狩 好応, 鵜狩 道旺)을 두 개나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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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가고시마 현립 이주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인 가고시마 시 교통국을 거쳐 1955년 니시테쓰 라이온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니시테쓰에서는 3년 간 1승도 올리지 못할 정도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질 못했는데 1958년 히로시마 카프에 이적하여 첫 승을 포함한 시즌 6승을 올렸다. 1958년 9월 19일 나가시마 시게오로부터 홈런을 맞았는데 나가시마가 1루 베이스를 실수로 밟지 않은 바람에 홈런이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당시 기록은 투수 땅볼).
이듬해 1959년에는 전 긴테쓰 펄스 감독이던 후지타 쇼조에게서 일대일 지도를 받고 슈토를 습득하는 등 시즌 11승을 기록했고 이후 팀내 투수진의 일원으로서 활약했다. 투구 스타일은 속구와 커브를 기조로 한 정통적인 우완 본격파 투수로서 10차례의 완봉승 외에도 25차례의 완투승도 기록하는 등 1960년대의 히로시마를 지원했다.
1967년 6월 10일, 웨스턴 리그인 긴테쓰 버펄로스전에서 웨스턴 리그 사상 최초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2] 하지만 1군에서는 단 한 차례도 승리없이 끝났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말년에는 고향인 가고시마현 히오키시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했고 2006년에는 사회인 야구 클럽팀 ‘가고시마 화이트 웨이브’ 감독을 맡은 것 외에도 타 지역과 가고시마현에 있는 히로시마팬에 의해서 설립한 ‘카코이카이’ 명예고문도 맡았다. 2018년 8월 27일에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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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 원래 소질이 있는 선수였으며 니시테쓰로부터 방출이 결정됐을 때 조감독이었던 가와사키 도쿠지는 미하라 오사무 감독(당시)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정신 나갔냐!”라며 고함쳤다고 한다.
상세 정보
출신 학교
- 가고시마 현립 이주인 고등학교
선수 경력
- 가고시마 시 교통국
- 니시테쓰 라이온스(1955년 ~ 1957년)
- 히로시마 카프(1958년 ~ 1967년)
등번호
- 26(1955년 ~ 1957년)
- 17(1958년 ~ 1967년)
등록명
연도별 투수 성적
참고 문헌
- 가나야마 지로 감수. 《広島東洋カープ》 [히로시마 도요 카프]. ISBN 4-89174-012-4. ※42쪽 중에서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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