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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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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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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겸(于謙, 1398년 5월 13일-1457년 2월 16일)은 자(字)는 정익(廷益), 호는 절암(节庵)이고 시호는 충숙(忠肅), 중국 (明) 왕조의 중신으로 절강(浙江) 전당현(錢塘縣)[1] 사람이다. 관직은 병부상서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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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겸은 영락(永樂) 신축년에 진사(進士)로 급제하였으며,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의 모반을 진압하는데 참가하여 공을 세우고 명 선종(宣宗)에게 중용되어 황명을 띠고 산서(山西), 하남(河南) 등지를 순무하기도 하였다. 명 영종(英宗) 때에 환관 왕진(王振)에게 죄를 지어 하옥되었으나 석방되어 후에 병부시랑으로 기용되었다.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 이후 우겸은 이어 병부상서가 되었고, 명 대종(代宗)을 추대하고 명군을 추스려 오이라트로부터 수도 북경의 방어에 성공하였다. 명 대종으로부터 소보(少保),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더해졌다. 그러나 오이라트로부터 돌아온 명 영종이 탈문의 변(奪門之變)을 일으키고 복위에 성공한 뒤, 우겸은 무고로 투옥되었고, 처형되어 저자에 그 시체가 내걸렸다. 성화(成化) 연간에야 그에게 씌워진 모반의 죄가 벗겨졌다.

현대 중국의 베이징시(北京市)와 그의 고향인 항저우(杭州) 서호(西湖) 옆에 우겸을 기리는 사당과 그의 옛 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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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음(石灰吟)

석회음
원문 해석
千錘萬鑿出深山 천 번 깨고 만 번 뚫어 산 속에서 캐내어
烈火焚燒若等閑 뜨거운 불로 태워도 대수롭지 않으니
粉身碎骨渾不怕 살을 에고 뼈를 부수어도 두려움 하나 없이
要留淸白在人間 이 세상에 청백리로 남기를 바랄 뿐이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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