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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단 (교서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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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서우왕 유단(膠西于王 劉端, ? ~ 기원전 108년), 혹 교서어왕(膠西於王)은 중국 전한의 황족·제후왕이다. 경제와 정희 사이의 아들이다.

간략 정보 유단 劉端, 본명 ...

생애

오초칠국의 난이 진압된 이후, 자살한 교서유앙을 대신해 경제 3년(기원전 154년)에 교서왕이 되었다.[1][2][3]

교서우왕은 음위를 앓고 있어 한 번 부인을 가까이하면 몇 달을 앓았다. 총애하는 소년을 낭(郞)으로 삼았는데, 이 낭이 후궁과 난행을 하자 죽이고 그 어머니와 아들도 죽였다. 자주 법을 어겨 대신들이 죽이도록 청했으나 황제는 차마 그러지 못했고, 더 심해지자 교서우왕의 봉국을 절반 이상 깎았다. 교서우왕은 불만을 품고 나라를 다스리지 않아, 부고가 무너지고 많은 재물이 훼손되었으나 부고를 수리하지 않았으며 관리들에게 세금을 걷지 말라고 명령했다. 또 숙위를 두지 않고, 궁궐을 봉하고 한 문만으로 출입했으며, 변성명하고 미복으로 다른 나라를 왕래했다. 한나라에서 임명한 과 질이천석의 관리들이 한나라의 법대로 치리하면 자신이 조정에 이들의 죄를 고해 죽이고 죄가 없으면 기만하여 죽였는데, 모략이 무궁무진하고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자기 잘못을 잘 꾸몄다. 또 이 상이나 관리들이 교서우왕의 말대로 다스리면 한나라에서 주살해, 교서나라의 상이나 이천석 이상의 관료들은 숱하게 죽어나갔다.[1] 동중서와 사이가 나쁜 공손홍이 교서우왕의 손을 빌려 죽이려고 동중서를 교서우왕의 상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4] 한편 회남유안이 반란죄로 사로잡혔을 때, 회남왕을 법대로 죽이고 회남왕의 관리들도 다 삭탈관직하고 관리가 아닌 자들은 속죄금을 내라고 상소를 올렸다.[5]

교서우왕은 47년간 왕으로 있다 죽었고, 아들이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1][2][3] 시호(于) 혹은 (於)[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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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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