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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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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윤(陸鍾允, 1863년 ~ 1936년)은 조선의 문신이다.[1] 본관은 옥천(沃川)이다.

생애

생부는 육용필(陸用弼, 초명은 육용점(陸用漸), 1838년 ~ ?)이나 아들이 없던 삼촌 육용정(陸用鼎, 초명은 육용관(陸用觀), 1843년 ~ 1917년)의 양자가 되었다.

1891년(고종 28)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2]

1894년(고종 31) 제중원주사(濟衆院主事)의 직위에 오르면서 아버지 육용정은 서오릉(西五陵)의 참봉(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3]

1894년 6월에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가 되었다.[4]

1895년(고종 32) 11월에 3품으로 외부 교섭 국장(外部交涉局長)에 임용되고 주임관(奏任官) 4등에 서임되었다.[5]

아관파천 당시 유길준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12년 아들 육정수(陸定洙)와 함께 아버지 육용정(陸用鼎)이 저술한 《의전기술(宜田記述)》을 간행하였다. 《의전기술》의 권두에는 육용정의 사진과 김윤식(金允植)이 1891년(고종 28)에 쓴 서문이 있다.

1927년 조선사 편수회의 촉탁위원을 지낸 바 있다.[6]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큰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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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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