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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요시히로
일본의 야구선수 (1982–2025)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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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요시히로(일본어: 伊藤 義弘, 1982년 6월 2일 ~ 2025년 10월 6일)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 프로 야구 일본 야구 기구의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한 일본인 투수였다.
이토는 2025년 10월 6일, 43세의 나이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후쿠오카시에서 택시와 충돌한 사고로 사망하였다. 그는 병원에 도착한 지 두 시간 후 사망이 선언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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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요약
관점
프로 입단 전
고등학교 시절인 1999년 제82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고 고쿠가쿠인 대학에 진학 후 구속이 150km/h에 가까운 속구파 투수로서 세간의 주목받았다. 대학 졸업 후인 2005년에는 도카이 여객철도에 입사했고 2006년에 나카스카 사토시와 함께 제77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 이듬해 2007년에는 도시 대항 야구 대회의 출전권을 놓쳤지만 오지 제지 경식 야구부의 보강 선수로서 제78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는 등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2007년 11월 9일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았고 그 후 12월 3일에 지바 롯데와 정식 계약을 맺음과 동시에 등번호는 30번으로 정했다.
프로 입단 후
2008년
신인이면서도 개막 1군 엔트리에 합류했고 팀내 4위인 51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이 3.05의 성적을 남겼다. 초반에는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등판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시즌 종반에는 이기는 경기에서의 계투로 투입해 승패 없이 9홀드를 기록했다.
2009년
그 해에는 호조를 유지하면서 전년도를 웃도는 팀 최다인 56경기에 등판했다. 평균자책점 4.55와 2승 6패라는 불안한 성적을 남겼지만 12홀드를 기록하면서 팀내 중간 계투로서의 역할을 확립시켰다.
2010년
갑작스런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팀의 일원으로서 등판해 최종전에서는 구원 투수를 맡는 등 65경기에 등판하여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등판하면서 4차전에서는 오시마 요헤이에게 결승타를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7차전에서는 12회초에 희생타를 때려내며 후속타자인 오카다 요시후미의 결승타를 연결해 점수를 만들었고 이후 등판에서는 2이닝을 던져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었다.
2011년
9월 1일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QVC 마린필드)에서 7회 1사, 타자 양다이강의 배트가 부러지면서 왼쪽 무릎에 맞아 부상당했다.
2012년
2012년에는 전년도 부상으로 남은 후유증의 영향으로, 스프링캠프 중 오른쪽 어깨를 부상하였다. 이후에도 겨드랑이 통증, 오른쪽 고관절 통증(천장관절염), 허리 통증 등으로 고생하였으며, 단기간에 걸쳐 잇따라 부상이 발생하였다. 시즌 종반인 9월 2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부터 1군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1군에서의 등판은 불과 6경기에 그쳤으며, 프로 입단 이후 처음으로 시즌 50경기 등판이途絶하였다.
2013년
2013년에는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하였으나, 3경기째 등판에서 6실점을 기록하는 등 투구 내용이 안정되지 못하였다. 1군에서의 공식전은 총 7경기에 그쳤으며, 방어율은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시즌 종반인 9월에는 오른쪽 팔꿈치 관절 내시경 수술을 받았다.
2014년
2014년에는 재활 중 다시 부상을 입어 8월에서야 1군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1군에서의 공식전 등판은 프로 입단 이후 최저인 5경기에 머물렀다. 8월 6일, 라쿠텐 골든이글스전(QVC 마린필드)에서, 오른손 타자의 배트를 부러뜨리는 투구로 경기 종료 후에 관중의 갈채를 받았다.
2015년
2015년에는 1군 공식전 등판은 1차례에 불과하였다. 승리 투수는 되지 못하였으며, 방어율은 15.40에 달하였다.
2016년
2016년에는 입단 이래 처음으로 1군 공식전 등판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하였으며, 10월 1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은퇴
NPB(일본 프로야구) 다른 구단에서의 현역 지속이나 사회인 야구로의 복귀를 희망하면서도, 영입이나 입단 오퍼가 없는 경우에는 현역을 은퇴할 의향을 보이고 있었다.
2016년 11월 12일, 12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한신 고시엔 구장)에 참가. 시트 배팅 형식으로 3명의 타자와 대결해, 2명을 범타로 잡은 한편, 내각 직구로 안타를 허용했다. 또한, 같은 달 16일부터 18일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의 가을 캠프(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에 참가. 불펜 투구와 실전 등 대부분의 테스트에 임했으나, 합격에는 이르지 못했다. 테스트 종료 후인 11월 19일에 은퇴를 표명했다. 12월 2일 자로 NPB에서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었다.
은퇴 이후
학생야구자격회복제도를 통하여 2017년 2월 7일부로 일본학생야구협회로부터 학생야구 자격 회복의 적성을 인정받음으로써, 동 협회에 가맹한 대학·고등학교의 경식야구부에서 선수 지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체육 교원 자격증을 취득할 목적으로 2017학년도부터 일본체육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체육학(코칭학·스포츠심리학) 등을 배우며 대학원 석사학위와 교원 자격증 취득에 전념하였다.
석사학위(체육학)와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후, 2020년 4월 1일부로 보건체육 교원으로서 모교인 도후쿠오카 고등학교에 채용되었다. 채용 이후에는 학생 시절 소속하였던 경식야구부의 지도에도 관여하였다. 같은 해 여름부터 감독으로 취임하여 팀을 13년 만에 추계 규슈대회 출전으로 이끌었다. 이어 2021년에는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 후쿠오카대회에 처음으로 임할 예정이었으나, “부원에게 폭언을 하였다”는 이유로 대회 이전부터 1개월간의 근신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사정으로, 근신 기간과 겹치는 동 대회에서는 부부장 이토 히로시가 감독 대리를 맡았다. 동교의 감독직은 2025년 여름까지 수행하였다.
감독 퇴임 이후인 2025년 9월에는 스포츠 아카데미 Pitch+를 개설하였다. 동 아카데미에서는 투구 동작에 특화한 야구 교실과 놀이를 통해 운동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운동 교실의 두 가지를 운영하였다.
2025년 10월 6일 14시경, 후쿠오카시 조난구에서 오토바이를 운전 중 교차로에서 택시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후쿠오카 시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16시 16분 사망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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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학교
-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
- 고쿠가쿠인 대학
선수 경력
- 사회인 시대
- 프로팀 경력
- 지바 롯데 마린스(2008년 ~ 2016년)
개인 기록
- 첫 등판 : 2008년 3월 25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 첫 탈삼진 : 상동.
- 첫 홀드 : 2008년 3월 26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 첫 승리 : 2009년 4월 30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6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 첫 세이브 : 2010년 10월 1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24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등번호
- 30(2008년 ~ 2015년)
연도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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