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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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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1983년 3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다.

간략 정보 이호진, 개인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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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강릉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를 중퇴하였다. 강한 체력으로 인하여 '아이언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스스한 인상으로 인하여 거지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왕초'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클럽 경력

해외 이적을 둘러싸고 성균관대학교와 이견을 보여 중퇴한 뒤 해외 진출을 모색한 그는 벨기에 주필러 리그RSC 안데를레흐트, 네덜란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 프랑스 리그 1AS 낭시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모두 실패하였다.[1][2] 우여곡절 끝에 이적 시간이 마감되기 20분 전인 2006년 2월 1일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싱 산탄데르에 입단하면서 이천수에 이어 두 번째로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3][4] 하지만 계속적으로 부상을 입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다가,[5][6] 2005-06 시즌 마지막 경기인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7][8][9] 하지만 다시 허벅지 부상을 입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라싱 산탄데르와의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그 후 2008 K리그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여[10] 2008년 드래프트 3순위로 인천에 입단하였지만,[11] 또 다시 부상으로 신음하며 K리그에서는 아예 출장하지 못했다.

결국 타 클럽으로의 이적을 추진하였고, 2009년 핀란드 베이카우스리가JJK 이위베스퀼레로 이적하였다.[12] 이후 2009년 8월 FC 이위베스퀼레 블랙버드로 임대 이적하면서 활약했고, 2010년 타이 프리미어리그폴리스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을 맺었다.

2011년 고양 KB국민은행에서 뛴 그는 이듬해인 2012년 현역 입대와 함께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13] 3사단에서 현역으로 복무한 그는 2014년에 제대한 후 축구 에이전트 및 유소년 지도자로 간간히 활동 중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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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경력

2003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200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예선 1차전 독일전에서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펼쳐 대한민국의 2-0 승리에 공헌하였지만, 골을 넣는 과정에서 골키퍼와 충돌하여 무릎 부상을 입어 6개월 동안 경기에 뛰지 못했다.[15] 당시 독일 청소년대표팀 감독이 울리 슈틸리케였다.

경력

선수 경력

출신 학교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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