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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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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군(日南郡)은 중국의 옛 군이다. 현재의 베트남 응에안성에 설치되었으며, 한나라에서 당나라에 걸쳐 간헐적으로 설치되었다.
한나라 당시 한나라 영토 최남단이었다.
전한
교지자사부에 속했다. 작은 강이 16개 있어 함께 3180리를 간다.[1]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5,460호, 69,485명이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지리지의 내용이다.[2][1] 원연·수화 연간(기원전 8년 무렵)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총 5현이다. 치소는 주오현, 서권현 두 설이 있다.
신
다음 현의 이름을 고쳤다.
후한
낙양에서 남으로 30,400리 거리에 있다. 5성 18,263호 100,676명을 거느렸다. 후한말 상림현에서 토착민들이 현령을 죽이는 반란을 일으키고 일남군 일대에 참파를 세우면서 행정력을 크게 상실하였다. 43년 쯩 자매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마원이 내려가서 진압했다.
육조
손오
이때부터 육조시대에는 참파가 일남군 지역에서 크게 세력을 행사하고 있었기에 타지에 옮겨져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일남이 속해있는 교주는 사섭의 통치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사섭이 손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최종 군주는 손권이었다.
서진
282년(태강 3년), 참파에게서 군역을 수복해 재설치되었다. 5현임에도 불구하고 600호를 다스리는 매우 작은 군이 되었다.[3]
유송, 남제
서진대에 기존 5현과 신설된 2현을 그대로 유지해 7현 402호를 거느렸다. 영현은 제에서 변화가 없었다.
남량, 남진
남량에서 덕주로 소속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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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598년(개황 18년) 주현제를 시행했을 때는 환주(驩州)라 칭하였다. 605년(대업 원년) 참파를 정벌한 이후 군역을 수복했다.
8현 9,915호를 거느렸다.[5]
태수
전한
- 등밀(鄧宓, 무제 말기?)
후한
동오
- 황개(黃蓋, 대제 시기)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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