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日本- 戰爭犯罪, 일본어:にほんの せんそうはんざい, 영어:Japanese war crimes)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일본 제국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전쟁 범죄를 지칭한다. 일본 내에서는 우익 정치의 영향으로 극동 국제 군사 재판(IMTFE)만을 한정하여 의미를 축소해석하기도 한다. 몇몇 전쟁 범죄는 19세기 말 일본 제국의 군 인사들에 의해 자행됐으며, 대부분이 쇼와 시대 초에 일어났고, 1945년 일본의 항복까지 계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군은 중국, 만주, 한반도, 동남아시아, 태평양 군도에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서 민간인들을 집단살해한 난징 대학살이 있다.
집단학살
2차 대전 도중 아시아-태평양 전구, 남서태평양 전구, 동남아시아 전구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중국인, 한국인, 말레이인,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베트남인, 인도인 등을 집단적으로 살해하였다. 그리고 호주인, 영국인, 미국인 등 연합국의 포로들에 대해서도 학살이 이뤄졌다.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중립을 표방하던 미국에 대한 불법적이고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을 감행했다.
전쟁 범죄
제네바 협약을 무시하고 포로에 대한 고문과 살해를 자행하였다. 그리고 생화학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마닐라 전투 당시 필리핀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포로 대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 대우는 매우 잔인했다. 특히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는 절대다수의 포로들이 교량 건설, 기지 건설 등의 노동에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단순한 재미로 포로들을 처형하기도 했다. 한 영국인 참전 군인은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상했다.
미얀마 정글에서 있었던 행진은 죽음의 행진이었다. 다리 건설에 동원되기 위해 현장으로 이동하던 중 한 일본인 장교는 곧 있을 검술대회 연습을 위해 포로 몇 명을 모았다. 키가 작았던 그는 영국군 포로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하기 위해 큰 나무 상자 위에 올라섰다. 그리곤 포로들의 목을 베었고 매우 흡족해 했다. 다리 건설에 투입되기 전에 이미 수많은 나의 전우들이 재미로 혹은 아무런 이유없이 살해되었다.
호주군 포로 레오나드 시플릿 병장을 참수하는 일본군
이러한 사실들로 말미암아 일본군에게 사로잡힌 포로들의 생존 확률은 유럽에서의 생존 확률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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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인멸
일본국 정부는 이러한 전쟁 범죄에 대하여 자국 역사 교육에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 또한 일본 정부는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러한 전범에 대한 자료와 기록을 대부분 은폐하거나 폐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