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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로자 코사크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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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로자 코사크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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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로자 코자크의 술탄에게 보내는 편지는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다.[1] 이 그림은 자포로자 코자크가 선언문을 작성하다 또는 코자크가 터키 술탄에게 편지를 쓰다로도 알려져 있다.[a]

간략 정보 자포로자 코사크의 답변, 영어제목 ...

레핀은 1880년에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891년에 완성했다. 그는 스타니차 파슈콥스카야(현재 크라스노다르 내), 예카테리노슬라프(현재 드니프로), 체르니히우 주의 카차니우카에서 습작을 그렸다.

캔버스 하단에 작업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알렉산드르 3세는 이 그림을 35,000 루블에 구매했다. 그 이후로 이 그림은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미술관에 전시되어 왔다. 레핀이 그린 또 다른 버전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하르키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2]

이 그림은 1980년 BBC Two 시리즈 《100 Great Paintings》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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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요약
관점

역사성

이 그림은 1676년을 배경으로 한 가상 역사적 상황을 묘사하며, 코자크오스만 제국술탄 메흐메트 4세의 최후통첩에 모욕적인 답장을 보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이 전설은 당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받아들였으나, 후대의 상세한 조사에 따르면 사실이 아닌 소설에 가깝다.

이야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드니프로강 하류 지역에 살던 자포로자 코자크("급류 너머"라는 뜻, 우크라이나어: za porohamy)는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는 자신의 군대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자크에게 오스만 통치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이반 시르코"가 이끄는 코자크 족은 그들의 특유의 방식으로, 모욕과 욕설로 가득 찬 편지를 썼다. 이 그림은 코자크들이 점점 더 저속한 욕설을 생각해내기 위해 애쓰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묘사한다.[3]

19세기에 자포로자 코자크는 (권위주의적인 러시아 국가의 문명화된 시민들과는 대조적으로) 원시적인 활력과 권위에 대한 경멸적인 무시를 보여주는 익살스러운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4]

미국의 슬라브 및 동유럽 역사가 "대니얼 C. 워"(1978)는 "원래는 술탄과 치히린 코자크 간의 서신이었는데, 18세기에 여러 번의 변형을 거치면서 치히린 코자크가 (당대에 널리 알려졌던) 자포로자 코자크가 되고, 답장에 포함된 젊잖은 풍자가 저속하게 변질되었다. 이 저속한 버전의 코자크 서신이 19세기에 꽤 널리 퍼졌다. (...) 19세기의 코자크 서신의 인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일리야 레핀이 그린 자포로자 코자크가 떠들썩하게 답장을 쓰는 모습을 그린 유명한 그림이다."라고 말했다.[5]

레핀의 해석

니콜라이 고골의 1842년 국민낭만주의-역사물 단편 소설인 《타라스 불바》는 이 사건을 지나가듯 묘사한다. 레핀은 "사바 마몬토프"와 그의 예술 그룹과 교류했고, 아마도 그곳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레핀은 마몬토프의 집에서 이 그림의 첫 스케치를 그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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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버전의 그림

1889년, 일리야 레핀은 원작을 작업하던 도중에 두 번째 버전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작가는 이 두 번째 버전을 더 "역사적으로 사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두번째 버전은 1932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M. F. 숨초프 하르키우 역사 박물관"으로 이전되었고, 1935년에 다시 하르키우 미술관으로 옮겨져 현재 그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 두번째 버전은 원작보다 크기가 약간 작다.

2022년 3월 러시아의 동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하르키우 지역이 집중적인 포격과 공습을 받자, 박물관 직원들은 작품들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코자크의 두 번째 버전도 안전을 위해 옮겨진 작품 중 하나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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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요약
관점

그림 속 "코자크"들은 레핀의 친구들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의 학자들을 모델로 하였고, 그들 중에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코자크, 유대, 폴란드 혈통의 남성들이 포함되어 있다.[6][7]

인물
비고
Thumb붉은 모자를 쓰고 웃는 병사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림을 가르치고 미르 이스쿠스트바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였던 얀 치옹글린스키가 모델이었다. 그는 폴란드 혈통이었다.
Thumb타라스 불바의 어린 아들 안드리이를 묘사하는 "키 큰 웃는 남자"는 러시아 귀족 바르바라 우엑스퀼 폰 길렌반트의 아들이자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의 종손이다.
Thumb머리에 두건을 두른 키 큰 코자크는 그리스계 오데사 화가인 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쿠즈네초프이다. 그는 농담꾼이자 힘센 남자였으며, 예술 아카데미의 학술회원이자 교수였고, 아카데미의 전투 그림 클래스 책임자였다.
Thumb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이빨 없고 주름진 노인은 레핀이 알렉산드로프스크(현재 자포리자)의 부두로 갈때 그와 우연히 동반했던 인물이다.
Thumb마키트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어린 학생은 포르피리 마르티노비치이다. 그는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필리그리 예술에 능숙했고, "여름 방학을 폴타바 지역에서 보내며 민족지학 자료를 수집하고 마을 풍경과 농민, 지주, 관리인, 성가대 지휘자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그렸다."[8] 뿐만 아니라 "풍경화와 초상화"도 그렸다.[8] 그러나 질병으로 인해 25세에 풍경화 그리기를 포기해야 했다. 레핀은 그를 직접 그릴 수 없었지만, 대신 마르티노비치의 미소 짓는 표정을 포착한 석고 가면을 사용했다.
Thumb"진지한 코자크"는 우크라이나 문화의 중요한 후원자였던 미술 후원가 바실 타르노프스키가 모델이었다.
Thumb코자크 홀로타("가난한 자")의 모습은 바실 타르노프스키의 마부 미키트카가 모델이었다. 남자의 이빨이 없고 취한 듯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감명을 받은 레핀은 그와 함께 드니프로강을 건너는 동안 그를 그렸다.
Thumb코사크 지도자 "이반 시르코" 역할의 "웃는 병사"는 러시아군 장교이자 남서부 총독이었던 미하일 드라고미로프 장군이 모델이었다.
Thumb타타르족을 묘사하는 인물은 실제 타타르족 학생으로부터 그려졌다.
Thumb코자크 지도자 "타라스 불바"는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교수 알렉산더 이바노비치 루베츠가 모델이었다.
Thumb타라스 불바에게 거의 가려진 "노란 모자를 쓴 코자크"는 마린스키 극장의 오페라 가수이자 폴란드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아버지인 표도르 스트라빈스키가 모델이었다.
Thumb"대머리"는 러시아 황실의 대내실인 게오르기 알렉세예프이다. 그는 법원 재정을 담당했다. 그는 이 역할에 포즈를 취하도록 초대되었지만, 품위가 없다고 느껴 거절했다. 대신 레핀은 알렉세예프가 판화 전시를 보고 있는 동안 그의 뒤통수를 스케치했다. 그림을 보았을 때, 알렉세예프는 자신의 머리를 알아봤고 불쾌해했지만, 그때는 그림이 이미 황실 소장품에 있었다.[6][7]
Thumb반나체의 자포리자 전사는 레핀과 야보르니츠키의 친구이자 코스티안틴 벨로노프스키의 민속 학교 교사였다. 그는 그림에서 카드 놀이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카드 놀이를 즐기지 않았다.
Thumb"서기"는 자포로자 코자크 역사에 대한 주요 저작의 저자인 역사가이자 고고학자 드미트로 야보르니츠키가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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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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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두마 의원들이 스톨리핀에게 답장을 작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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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러시아 만화, "볼셰비키가 영국인 커즌에게 답장을 쓰다"는 그림 패러디

이 작품은 러시아 문화에서 잘 알려진 참조 자료가 되었으며, 우측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러시아 제국 두마(하원) 의원들이 표트르 스톨리핀에게 답장을 작성하는 모습[9], 그리고 소련 지도자들이 조지 너새니얼 커즌에게 반항적인 편지를 쓰는 모습[10]등의 정치 만화를 포함하여 여러 다른 작품에 의해 패러디되거나 모방되었다. 이 그림은 또한 2009년 러시아 영화 《대장 부리바》(장면 자체를 묘사)와, 같은 이름의 미국 영화(오프닝 크레딧에 그림 포함)와 같은 다른 작품에서도 참조되었다. 두 영화 모두 같은 이름의 역사 소설을 각색한 것이지만, 소설에는 이 장면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그림은 러시아 외에도 일반적으로 코자크의 상징이나 비유로 자주 사용된다. 비디오 게임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의 "코자크" 확장팩에는 예고편에 답장 문안과 원화를 바탕으로 한 삽화를 포함했으며,[11] 게임 《코삭: 유러피언 워》는 이 그림의 중심부를 로고에 담고 있고, 게임 《Cossacks 3》는 이 그림을 메인 메뉴 배경으로 사용한다.

화가 바실리 네스테렌코는 2017년에 현대 시리아 주둔 러시아 군인들을 특징으로 하는 그림 버전을 만들었고,[12][13] 프랑스 사진작가 에메릭 뤼세는 2023년에 현대 우크라이나 육군 군인들을 특징으로 하는 사진 버전을 만들었다.[13] 뤼세는 이 사진 인쇄본을 2022년 러시아군에 의해 약탈당했던 헤르손 지역 미술관에 기증했다.[13] 러시아는 이 그림을 러시아 유산의 한 예로 간주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 그림을 우크라이나 유산으로 간주한다.[13]

내용주

    • 러시아어: Запорожцы пишут письмо турецкому султану Zaporozhtsy pishut pismo turetskomu sultanu[*]
    • 우크라이나어: Запорожці пишуть листа турецькому султанові Zaporozhtsi pyshut lysta turetskomu sultanovi[*]

각주

서적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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