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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드 아무제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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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드 아무제가르(1923년 6월 25일 ~ 2016년 9월 27일)는 이란의 경제학자, 정치가이다. 아미르아바스 호베이다 내각의 내무부장관, 재무부장관을 거쳐 이란 제국의 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임 중, 라스타키즈 당의 당수를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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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1923년 6월 25일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다.[1] 테헤란 대학교에서 법과 공학을 전공했다.[1] 그리고 코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
경력
아무제가르는 1955년의 자한샤 살레 내각에서 보건부 차관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고, 하산알리 만수르 내각에서 노동부, 그 이후 보건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에 이은 아미르아바스 호베이다 내각에서 9년간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한편 1965년부터 1974년까지 OPEC의 여러 정기 회의들을 주재했다.[2] 197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아흐마드 자키 야마니 석유장관과의 여러 차례에 걸친 유가(油價) 인상 합의로 유가는 4배 이상 높아졌고, 그에 따라 이란의 기반시설, 농업, 국방의 현대화를 추진할 자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공로로 그는 전현직 총리에게만 수여되는 '타지-에 이란(Taj-e Iran)' 1등훈장을 받았다. 1974년에 내무부장관이 되었다.

1975년 12월 21일 OPEC 회의 도중 베네수엘라의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에게 한때 납치되었다. 카를로스는 처음에 아무제가르를 살해할 예정이었으나 마음을 바꾸었고, 며칠 뒤 석방되었다.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난 얼마 뒤인 1977년 7월 7일, 아무제가르는 호베이다의 뒤를 이어 총리로 지명되었다.[3] 그러나 그는 곧 인기가 식었는데, 당시에 그가 수행한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려는 조치가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었음에도 실업률을 늘리고 사유자산을 축소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의 정부 문제와도 연관되어 결국 1978년 8월 27일 사임하여 자파르 샤리프에마미가 총리로 취임했다.[3][4]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그는 더는 이란에 살고 있지 않다. 2016년 9월 27일 미국에서 별세했으며, 이란 제국 총리로서는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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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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