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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조선)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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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鄭芝衍, 1525년~1583년 음력 8월 1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연지(衍之), 호는 남봉(南峯), 본관은 동래이다. 최종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다.
생애
1525년(중종 20년)에 태어났다. 동래 정씨 정광필의 증손자로 아버지는 《이생록》 등을 지은 의학자[1] 정유인이며, 어머니는 구원지의 딸이다[2]. 정유길의 종조카이기도 하다.
1549년(명종 4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66년(명종 21년)에 이황의 추천으로 왕손사부(선조의 스승)가 되었다[3]. 이후 의금부도사로 있다가 45세 때인 1569년(선조 2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전조[4]에 들어갔다. 이후 이조좌랑, 지평, 집의, 직제학, 대사간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경상도관찰사,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1581년(선조 14년) 우의정에 제수되었다[5]. 당시 정지연은 선조에 의해 진급 순서를 뛰어넘으면서 정승의 반열에 올랐는데, 과거에 급제하고 겨우 15년 만에 정승이 된 것은 당시로써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1583년(선조 16년) 음력 8월 1일에 향년 59세를 일기로 죽었다. 정지연이 죽자 선조는 매우 애통해하였으며[6], 당시 실록의 사관은 정지연에 대해 "별다른 재능이 없었어도 국량이 있었고 또 늦게 진출하였던 덕에 인망을 잃지 않았다."고 평하였다.[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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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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