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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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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 영어: Good)은 철학, 윤리학, 종교적 문맥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상태나 가치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악이나 부정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며, 도덕적 행위, 인간의 성품, 사물의 유용성, 그리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 선에 대한 정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시대와 문화, 사상적 배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해석되어 왔으며, 무엇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탐구는 윤리학의 근본적인 질문인 동시에 인간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1]

어원 및 의미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선(善)이라는 글자는 양(羊)과 말씀 언(言)의 회의문자로 해석되기도 하며, 양(羊)과 눈 목(目)의 변형으로 보아 양의 눈처럼 맑고 아름다운 모양을 뜻한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는 상서로움, 좋음, 훌륭함, 착함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공동체 내에서의 조화로운 관계나 인격적인 완성을 지향하는 뉘앙스를 가진다. 영어 단어 Good은 고대 영어 gōd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게르만어파의 어원인 gōdaz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는 '적합하다', '알맞다', '함께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본래 도덕적 의미보다는 사물이 어떤 목적에 부합하거나 품질이 뛰어남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2] 시간이 흐르면서 이 단어는 도덕적 우수성이나 신적인 속성을 묘사하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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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에서의 선

요약
관점

서양 철학사에서 선에 대한 탐구는 형이상학적 실재로서의 선과 실천적 규범으로서의 선으로 나뉘어 논의되어 왔다.

고대 및 중세 철학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선을 동일시하며, 누구도 자발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지가 악의 원인이며, 참된 앎이 곧 덕과 선으로 이어진다는 지행합일설을 펼쳤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선을 설명했다. 플라톤에게 있어 감각적인 현상 세계는 불완전한 것이며,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야말로 참된 실재였다. 그는 모든 이데아 중에서도 '선의 이데아'를 최고의 위치에 두었으며, 이를 태양에 비유하여 존재와 인식의 근거로 삼았다.[3]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초월적인 선 개념을 비판하고 현실 내재적인 선을 탐구했다. 그는 모든 행위가 어떤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았으며, 인간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최고선을 행복이라고 규정했다. 이때의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4] 중세에 이르러 선의 개념은 기독교 신학과의 결합을 통해 재해석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을 최고선으로 보았으며, 모든 피조물의 선함은 신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선이 결핍된 상태라고 정의함으로써 신의 완전성을 변호했다.[5]

근대 및 현대 철학

근대 철학에서는 신학적 권위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선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토마스 홉스는 선과 악을 개인의 욕구와 혐오의 대상으로 환원하여 주관적인 심리 상태로 설명했다. 반면 임마누엘 칸트는 선의 기준을 행위의 결과나 경향성이 아닌 의지에 두었다. 그는 선의지만이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주장하며, 도덕 법칙에 대한 의무감에서 비롯된 행위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이는 정언 명령이라는 절대적인 도덕 법칙을 통해 보편타당한 선을 확립하려는 시도였다.[6] 이에 반해 공리주의자들인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주의에 입각하여 선을 정의했다. 그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의 기초로 삼아, 쾌락을 증진하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 선이라고 보았다.[7] 20세기에 들어서 조지 에드워드 무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개념을 통해 선을 자연적 속성(쾌락, 욕구 충족 등)으로 환원하여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란색'을 정의할 수 없듯이 선 또한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단순하고 비자연적인 속성이라고 보았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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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에서의 선

동양 철학에서 선은 우주적 질서와의 조화, 그리고 인간 본성의 실현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유교

유교에서 선은 하늘의 이치가 인간에게 내재화된 본성으로 이해된다. 공자는 인(仁)을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제시하며, 이를 실천하는 것을 선으로 보았다. 맹자는 성선설을 통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측은지심을 비롯한 선한 마음의 싹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잘 가꾸고 확충하여 인의예지의 덕을 완성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고 주장했다.[9] 반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성악설을 제기했다. 순자에게 있어 선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예라는 사회적 규범과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후천적으로 습득하고 교정해야 하는 인위의 결과물이다.[10]

도가

도가 사상에서는 인위적으로 규정된 도덕적 선과 악의 구분을 비판한다. 노자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선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위선과 혼란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도가에서 말하는 참된 선은 인간의 판단으로 구분 지어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천지 만물의 근원인 도의 흐름에 순응하는 무위자연의 상태를 의미한다.[11] 장자는 만물이 본래 평등함을 주장하며, 세속적인 가치 판단으로서의 선악 구분을 초월할 것을 강조했다.

불교

불교에서는 선을 굘이라고 표현하며, 이는 능숙함, 유익함, 건전함 등을 의미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선은 깨달음과 해탈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뜻한다. 이는 탐욕(탐), 성냄(진), 어리석음(치)이라는 세 가지 독이 없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자비와 지혜의 실천이다. 불교의 인과법에 따르면 선한 행위는 좋은 업을 형성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악한 행위는 나쁜 업을 쌓아 고통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12] 궁극적으로 불교는 상대적인 선악의 대립을 넘어선 절대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지향한다.

종류 및 분류

윤리학에서는 선을 그 성격에 따라 내재적 선과 도구적 선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내재적 선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하며, 행복, 즐거움, 지식, 미덕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도구적 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선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나 의료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보다는 행복이나 건강이라는 내재적 선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도구적 선에 해당한다. 또한 도덕적 선과 자연적 선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도덕적 선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관련된 윤리적 가치를, 자연적 선은 건강이나 풍요와 같이 생물학적 혹은 물리적으로 유리한 상태를 의미한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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