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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제국주의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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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제국주의동맹(打倒帝國主義同盟, 영어: Down-with-Imperialism Union), 약칭 ㅌ·ㄷ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역사관에서 조선로동당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혁명조직으로 주장되는 단체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에 따르면, 이 단체는 1926년 10월 17일, 만 14세의 김일성이 중국 지린성 화뎬현에서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ㅌ·ㄷ의 결성을 통해 주체사상의 "빛나는 뿌리"가 마련되었으며, 조선 혁명이 비로소 자주적인 노선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선전한다. 이 조직은 조선로동당의 "역사적 뿌리"로 간주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상징으로 기능한다.[2]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부의 대한민국을 비롯한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타도제국주의동맹의 1920년대 실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ㅌ·ㄷ 관련 주장이 1960년대 후반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을 신격화하고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창작되거나, 이종락 등 다른 항일 운동가의 활동을 차용하여 극적으로 과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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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주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역사서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따르면, ㅌ·ㄷ의 결성 과정과 의의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1. 결성 배경 및 과정
김일성은 화성의숙 재학 시절, 당시 만주와 국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단체들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족주의 계열은 공허한 말다툼에 빠져있고, 초기 공산주의 계열은 코민테른의 지시에만 얽매이는 사대주의와 파벌 싸움(이른바 엠엘파, 화요파 등)에 매몰되어 대중과 유리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김일성은 "조선 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 인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주체의 원칙을 확립했다고 한다. 그는 1926년 10월 17일, 화뎬현의 한 가정집에서 김혁, 차광수 등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소수의 진보적인 청년 학생들을 규합하여 비밀리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14세였다.
2. 강령과 이념적 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ㅌ·ㄷ이 "참다운 공산주의적 혁명조직"이었으며, 그 강령이 다른 어떤 단체와도 구별되는 독창성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 당면 과업: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쟁취한다.
- 최종 목적: 조선에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하고, 나아가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전 세계에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강령이 민족 해방 투쟁(반제)과 계급 해방 투쟁(반봉건·공산주의)의 과업을 하나로 통일시킨 "주체적 혁명 강령"이라고 평가한다. 즉, ㅌ·ㄷ의 결성이 주체사상에 기반한 조선 혁명의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2]
3. 조직의 발전과 계승
ㅌ·ㄷ은 결성 이후 비밀리에 회원을 늘리고 사상을 전파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에 따르면, ㅌ·ㄷ은 1927년 8월, 보다 대중적인 성격의 합법·비합법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확대·개편되었다.
이후 반제청년동맹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으로 발전하고, 이는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의 핵심 골간이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조직적 흐름이 조국광복회를 거쳐 1945년 조선로동당 창건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ㅌ·ㄷ을 당의 "첫 뿌리"이자 "만년 초석"으로 신성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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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학술적 평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부의 학계, 특히 대한민국과 서구의 연구자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ㅌ·ㄷ 관련 주장이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전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 실체에 대한 회의론
가. 문헌상의 문제
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조직의 이름은 1920년대 당시의 독립운동 관련 문헌, 중화민국 정부의 기록, 혹은 일제의 정보 보고서 등 동시대 사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ㅌ·ㄷ에 대한 언급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1968년 백봉의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이나 197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역사사전》 등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부에서 갑산파 숙청 등 반대파를 제거하고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ㅌ·ㄷ이 김일성의 혁명 역사를 신격화하고, 그의 사상(주체사상)이 소련이나 중국의 영향이 아닌 10대 시절부터 독자적으로 형성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창조"된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3]
나. 1920년대 만주 상황과의 불일치
1920년대 중반 만주 지역의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운동은 코민테른의 1국 1당 원칙에 따라 활동하고 있었으며, 극심한 파벌 대립을 겪고 있었다.
당시 14세의 소년이었던 김일성이 이러한 복잡한 이념적 지형 속에서 기존의 모든 분파를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로 비판하고, "주체"라는 독자 노선을 내세워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다는 주장은 1920년대의 역사적 맥락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1] 주체라는 용어와 사상 체계 자체가 1950년대 중반 이후에 정립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다. 이종락과의 관련설
일부 연구자들은 ㅌ·ㄷ의 기원이 김일성이 아닌, 당시 만주에서 활동했던 급진적 항일 운동가 이종락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통일연구원의 서재진 박사 등은 김일성이 화성의숙에 입학한 것이 1926년 6월인데, 불과 4개월 만인 10월에 자신보다 나이가 5~10세 많은 선배들을 규합하여 조직을 이끌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1] 이들은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실제로는 이종락이 결성한 길흑농민동맹 산하의 급진적 단체였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제국주의 타도"라는 구호 자체는 당시 공산주의 운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슬로건이었다고 분석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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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의 위상과 선전
타도제국주의동맹은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의 정통성과 주체사상의 역사적 순수성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장치이다.
1. 조선로동당의 역사적 뿌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창건일을 1945년 10월 10일로 기념하면서도, 당의 "사상적·역사적 뿌리"는 1926년 10월 17일 ㅌ·ㄷ의 결성에서 시작되었다고 공식화한다.[2] 이는 당의 기원을 소련 군정이나 중국 공산당의 도움과 분리하고, 오직 김일성의 독자적인 혁명 사상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2. 기념 사업 및 상징물
가. ㅌ·ㄷ 관련 기념물
평양시 보통문 옆에는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을 기념하는 거대한 기념탑이 1976년(결성 50주년)에 건립되었다. 조선혁명박물관 등 주요 사적지에도 ㅌ·ㄷ 결성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나. 기념일 및 행사
매년 10월 17일은 ㅌ·ㄷ 결성 기념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관영 매체(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는 "성스러운 ㅌ·ㄷ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내용의 특집 기사와 사설을 대대적으로 내보낸다.[2] 모란봉극장 등에서는 기념 공연이나 중앙보고대회가 열리기도 한다.[1]
3. 사상 교육과 현대적 적용
ㅌ·ㄷ의 정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 특히 청년 세대에 대한 사상 교육의 핵심 소재로 활용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학생은 학교의 혁명역사 과목을 통해 ㅌ·ㄷ의 결성 과정을 신화처럼 배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ㅌ·ㄷ 정신은 "백두의 혁명정신"과 함께 현 세대가 계승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강조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매체들은 ㅌ·ㄷ이 제시한 자주의 기치와 수령을 중심으로 한 단결의 전통이 오늘날 "미제(미국)의 압살 책동"에 맞서 일심단결을 강화하고 자력갱생을 실현하는 사상적 무기라고 선전한다.[2]
각주
같이 보기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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