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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티나리 제단화
휘호 판 데프 후스의 삼면화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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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티나리 제단화(Portinari Altarpiece, 1475년 경) 또는 포르티나리 삼면화(Portinari Triptych)는 플랑드르의 화가 휘호 판 데르 후스의 삼면화로, 토마소 포르티나리가 의뢰했으며, 목동들의 경배를 묘사한다. 크기는 253 x 304 cm이며,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제단화는 인물과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15세기 후반 플랑드르 미술 작품 중 가장 많이 연구된 그림으로 꼽힌다.[1]
역사
이 작품은 병원 설립자의 후손인 이탈리아 은행가 토마소 포르티나리가, 피렌체 최대 병원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 내 교회를 위해 의뢰했다. 포르티나리는 메디치 가문의 메디치 은행 대표로서 40년 이상 브뤼허에서 살았다. 포르티나리 자신은 그의 두 아들 안토니오와 피젤로와 함께 왼쪽 패널에 묘사되어 있으며, 그의 아내 마리아 디 프란체스코 바로첼리와 딸 마르가리타는 오른쪽 패널에 함께 묘사되어 있다. 피젤로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그들의 수호성인과 함께 있다. 수호성인은 성 토마스 (창을 들고 있음), 성 안토니우스 (종을 들고 있음), 막달라 마리아 (연고병을 들고 있음) 그리고 성 마르가리타 (책 들고 용을 밟고 있음) 등이다. 1483년 이 작품이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포르티나리 가문의 예배당에 설치되었고, 이를 본 이탈리아 예술가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모방하려 했다. 가장 좋은 예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 성당에 있는 사세티 예배당을 위해 그린 목자들의 경배 (1485)이다.[2] 그러나 목자들의 자연주의적 묘사는 14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목자들의 경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에서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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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제단화가 원래 보관되었던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은 1285년 폴코 포르티나리가 지었다. 이 병원은 침대 12개로 시작하여 15세기에는 약 200개까지 늘어났다. 병원의 명성과 성장은 피렌체 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잘 알려지게 만들었다. 병원은 자선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나중에는 포르티나리 유산의 일부가 되어 폴코 이후 세대에게 명예를 가져다주었다.[1]
토마소 포르티나리가 이 제단화를 의뢰한 시기는 브뤼허에서 경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1470년대였다. 이 제단화의 엄청난 크기, 그리 판 데르 후스를 제작자로 선택한 것은 후원자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는 증거였다.[1]
설명
요약
관점
중앙 패널에서 세 명의 양치기들이 아기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판 데르 후스는 이 소박한 인물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무릎을 꿇은 천사들이 성모와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데, 아기는 구유에 있지 않고 황금빛 후광에 둘러싸인 채 바닥에 누워 있다. 예수 경배를 이렇게 특이하게 묘사한 것은 아마도 스웨덴의 비르지타 성녀의 환상에 기반한 것일 것이다.

배경에는 중심 주제인 아기 예수 탄생과 관련 있는 장면들을 작게 그렸다. 왼쪽 패널의 뒤쪽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피난 가는 길을 그렸고, 중앙 패널의 오른쪽 뒤에는 천사가 목지들을 방문하는 모습, 오른쪽 패널에는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찾아오는 모습을 그렸다. 휘호 판 데르 후스는 하나의 그림에 동일한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식으로 연속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중앙 패널에서는 먼저 배경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여기에는 양치기들의 머리 위에 천사가 보인다. 이 장면은 천사가 목자들을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다. 중앙 패널의 전경에서는 (동일한) 목자들이 성모 마리아 맞은편에서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3]

대부분의 삼면화 제단화는 보통 닫힌 채로 보관되기 때문에, 포르티나리 제단화는 특별한 경우, 예를 들어 주일이나 축제일에만 열렸을 것이다. 휘호 판 데르 후스의 삼면화 외부에는 수태고지 장면을 장식적으로 묘사했다. 화가 휘호 판 데르 후스는 성모 마리아와 가브리엘 천사를 그리자유로 그렸는데, 그리자유란 조각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속 두 인물은 얕은 벽감에 배치되어 있다.[3] 이 작품이 네덜란드에서 완성될 당시, 제단화 외부에 그리자유를 묘사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이 전통은 조각이 종교 예술의 주요 매체였던 중세에서 유래했다. 15세기와 16세기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조각이 여전히 우월하다고 여겨졌고, 반 데르 후스의 작품처럼 접이식 제단화의 중앙에는 조각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4]
후원자로서는 휘호 판 데르 후스처럼 그림 자체로 그림과 조각을 만들 수 있는 예술가를 고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 여러 장인을 고용하는 대신 한 예술가와 계약하면 되기 때문이다.[4] 이는 판 데르 후스에게도 도움이 되었는데, 전체 의뢰를 그와 조수들이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호 판 데르 후스 시대에 인기 있었던 또 다른 개념은 삼면화 외부에 수태고지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수태고지를 거쳐 패널를 열면 제단화 내부에는 그리스도의 삶의 장면이 담기는 것이 보통이었다.[4]
도상학
요약
관점
휘호 판 데르 후스의 제단화는 15세기 예수 탄생 장면 중 가장 복잡하고 숨겨진 도상학 상징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5] 삼면화 중앙 패널에는 예수 탄생과 목자들의 경배 장면이 묘사되며, 그 오른쪽 배경에는 목자들에게 알림 장면이 있다.
그림에는 성찬에 대한 헌신을 나타내는 특정 상징들이 있다.[5] 중앙 패널의 천사들은 전례복을 입고 있다.[6] 이 전례복은 보조 사제들이 첫 장엄 대미사에서 입는 것과 동일하다. 중앙 패널의 왼쪽 상단과 오른쪽 하단에는 첫 장엄 대미사에서 전통적으로 대사제가 입는 전례용 코프(망토 형태의 반원형 전례복)를 입은 두 천사가 있다.[7] 무릎을 꿇고 있는 천사의 오른편에는 두 천사가 있다. 이 두 천사는 옆으로 트여 있는 짧은 소매 의복인 달마티카 코프를 입고 있다. 달마티카는 보통 장엄 대미사에서 집사나 보조 집사가 입는다. 장엄 대미사에서는 모든 보조 사제의 전례복 아래에 아마포 장백의를 입는다.[1] 그림 속 모든 천사들은 같은 아마포 장백의를 입고 있다. 액자의 왼쪽 하단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천사는 아마포 장백의와 스톨을 입고 있다. 이러한 천사들의 전례복은 중앙 패널에 있는 밀 이삭과 함께 성찬을 상징한다.[1] 천사들의 전례복은 이 제단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제단에서 거행되는 성스러운 성사를 기억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구약성경이 끝날 것을 상징하는 두 가지 구조물, 즉 오른쪽에 있는 낡은 헛간과 왼쪽에 있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 건물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5] 헛간 근처의 기둥은 마리아가 출산할 때 지지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황소와 당나귀 또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황소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교회를 상징하며, 그 머리는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치켜들어 있다. 반면 당나귀는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데, 이는 시나고그에서 예배하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음을 나타낸다.[5]
붉은 옷을 입은 인물은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이다. 요셉 앞에는 나막신이나 샌들이 놓여 있다. 이 샌들은 성스러운 곳에 들어가거나 신성한 땅을 밟기 전에 신발을 벗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요셉이 밟고 있는 땅, 즉 아기 그리스도가 누워 있는 땅은 거룩한 곳이라는 의미이다.[3]
전경의 상징적인 꽃들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진홍색 백합과 흰색 및 보라색 붓꽃, 겸손을 상징하는 제비꽃, 십자가의 세 못을 상징하는 세 개의 붉은 카네이션, 그리고 성령을 상징하는 하늘매발톱이 포함된다.[4] 이 꽃들은 알바렐로 꽃병에 담겨 있다.[4] 알바렐로는 원래 약초, 향신료 및 기타 치료 효능이 있는 유기 화합물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 묘사된 모든 꽃들은 약효를 가지고 있다.[1]
- 중앙 패널의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있는, 목자들에게 예수탄생을 알리는 모습
- 아마포 장백의를 입은 천사
- 아라벨라 광택 도자기 속 꽃들의 세부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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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각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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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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