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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스타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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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스타우트(영어: Pola Stout, 1902년 1월 8일 ~ 1984년 10월 12일)는 미국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디자이너다. 빈에서 요제프 호프만을 사사하고 빈 공방을 위한 디자인 작업을 맡았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디올과 같은 유명 패션 브랜드를 위해 텍스타일을 만들었다.[1]
결혼 전 이름은 폴라 조세핀 와인바흐였다.
활동
응용미술학교에서 수학한 4년 동안 빈 공방을 위한 직물을 디자인하고[2]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고벨린(Gobelins) 태피스트리를 수선했다. 이때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6주 동안 공원 벤치에서 살기도 했다[3] 이후 파리에 살면서 패브릭 공방에서 일했다. 1925년 12월 28일, 요제프 호프만의 아들인 볼프강 호프만과 결혼했다.[4] 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9개월 후 맨해튼의 매디슨가에 있는 요제프 우르반의 사무실과 독립적인 디자인 파트너십을 맺었다.[5]
처음 미국에서 디자인한 물건은 전등갓[6]과 여성용 모자였다.[7] 부부는 뉴욕에 있는 두 개의 예술 영화관에서 건축 경력을 시작했다. 이때 지어진 건물이 브루클린의 세인트 조지 극장과 맨해튼의 리틀 카네기 극장이다.[6] 카네기 홀에서 동쪽으로 불과 몇 걸음 거리에 위치한 리틀 카네기는 당시 유행하던 호화로운 영화관과 대조되는 친근한 모더니스트 양식을 보여준다.[8] 상영관과 함께 미술 갤러리, 브리지 룸, 탁구장, 라운지와 무도회장이 독특한 구성을 이룬다. 1982년에 철거되었지만, 깔끔한 은색과 검은색 인테리어와 영화에 대한 헌신으로 세련된 뉴요커들에게 높이 평가되었다.[9]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 볼프강과 폴라 호프만은 20세기 초 아메리칸 모더니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1940년, 스타우트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착용한 네이비와 아이보리 격자 무늬 모직 셔츠를 제작했다.[10] 1949년 7월에는 엘리너 루스벨트가 직접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11] 이후로도 스타우트는 루스벨트 영부인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하고 짜낸 직물 컬렉션을 선물하곤 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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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폴라 스타우트가 디자인한 직물은 《히스 걸 프라이데이》와 같은 여러 영화의 의상에 사용되었다.
- 1961년 패브릭스 인터내셔널에 출품된 폴라 스타우트의 패턴. 담요를 위해 제작되었다.
- 폴라 스타우트가 디자인한 셔츠를 입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3년 촬영.
- 볼프강 호프만과 함께 디자인한 재떨이
- 리틀 카네기 극장의 상영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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