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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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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병준(皮秉俊, 1864년 ~ ?)은 조선 말기의 의사, 의관(議官)이다. 자는 경수(景秀), 본관은 홍천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의감직장(典醫監直長)을 역임한 피재원(皮載元)이고, 할아버지는 혜민서주부(惠民署主簿)를 지낸 피종순(皮宗舜)이며, 아버지는 혜민서참봉(惠民署參奉) 피상건(皮相健)이다. 외할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한 절충장군(折衝將軍) 정영서(鄭榮瑞)이고, 어머니는 연일 정씨 정영서(鄭榮瑞)의 딸이다.[1]

간략 정보 피병준皮秉俊, 임기 ...

1864년 1월 3일(음력) 한성에서 태어난 피병준은 21세 때인 1885년 9월 과거시험 증광별시(增廣別試) 의과(醫科)에 급제하여, 같은 해 12월 약방내침의(藥房內針醫)가 되어 9년 동안 근무했다. 1894년 7월 군무아문주사를 역임했다. 1896년 3월 관직을 사직하고 개업(醫業)하였다.[2]

1897년 5월 9일 조선국 종두의 양성소에 입학하여 11월 24일 졸업했다. 그리고 1898년 4월 12일 내부대신이 발급하는 〈내부 관립 종두 의사〉 면허장을 받았다. 그 뒤 피병준은 1899년 4월부터 내부 병원과, 내부 병원을 개칭한 광제원에서 계속 근무했으며, 1907년 일제가 의학교, 광제원, 적십자사병원을 통폐합하여 만든 대한의원에서도 의사 생활을 지속했다. 피병준은 대한의원을 승계한 조선총독부의원에서 1915년까지 근무하다가 그 해 4월 창덕궁 앞 와룡동에 외과 전문 창덕의원(昌德醫院)을 개업했다.

1911년 8월 4일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의술개업인허장〉을 발급받았다. 〈의술개업인허장〉은 통감부 시절인 1908년 6월부터 일제가 정식으로 근대식 의학 교육을 받았다고 인정한 사람들에게 발급한 것이다.[3]

피병준은 1885년 의과에 합격한 이래 30년이 넘게 전통 의술과 근대 의술을 넘나들고 아우르는 의사 생활을 지속했다. 당시로는 예외적일 뿐만 아니라 파격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삶이었다. 또 그는 내부 병원 창립 때부터 조선총독부의원에 이르기까지 16년 동안 내리 근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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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증조부 : 피재원(皮載元) - 전의감직장(典醫監直長)
    • 조부 : 피종순(皮宗舜) - 혜민서주부(惠民署主簿)
      •  : 피상건(皮相健) - 혜민서참봉(惠民署參奉)
    • 외조부 : 정영서(鄭榮瑞) - 절충장군(折衝將軍)

관련 인물

피병준처럼 과거 시험 의과에 합격한 전형적인 전통 의사이면서도 근대 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는 의학교 제1회 졸업생인 김성집(金性集, 1871 ~ 1934)과 이제규(李濟奎, 1873 ~ ?) 등 두 명이 더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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