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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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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学閥主義, Academic Elitism)는 개인의 실질적인 역량, 인격, 업무 성과 등과 관계없이 출신 학교, 특히 대학의 명성이나 파벌을 중시하여 사회적 지위, 취업, 승진, 임금 등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사회적 신념 및 관행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이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이력 자체를 뜻하는 학력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1] 학벌은 특정 학교 출신들이 형성한 배타적인 인적 네트워크나 그 학교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위신에 기반을 둔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주의는 대학 서열화와 맞물려 입시 경쟁, 사교육 과열, 사회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학벌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 구조에 따라 그 양상과 강도에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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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및 정의
학벌(学閥)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학교 출신 동문들이 사회적으로 뭉쳐 이익을 도모하는 배타적 파벌을 뜻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의 학벌주의는 단순한 파벌적 성격을 넘어선다. 이는 상위 서열의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전반적인 능력과 성실성을 보증하는 '증명서'로 통용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포괄한다. 경제학적으로는 마이클 스펜스의 신호 이론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고용주는 구직자의 실제 생산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명문대 졸업장을 고생산성의 신호로 간주한다는 것이다.[2] 학벌주의 사회에서는 대학 입시 결과가 개인의 평생 소득과 사회적 계급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며, 한 번 정해진 학벌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경직된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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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벌주의의 역사적 배경
한국 사회에서 학벌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먼저 조선 시대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는 입신양명을 최고의 효도로 여겼으며, 이를 실현하는 유일한 통로는 과거 제도였다. 과거 급제는 곧 관료로서의 진출과 가문의 영광을 의미했고, 이는 공부와 시험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4] 비록 현대의 대학 입시와 과거 제도는 그 형태가 다르지만, 시험 성적에 의한 줄 세우기와 이에 따른 사회적 보상 체계는 전통적인 숭문 사상과 맞물려 학벌 중시 풍조의 문화적 토대가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근대적 교육 기관이 설립되면서 경성제국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학교 위계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고등 교육을 받는 것은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으며, 이 시기에 형성된 학연은 해방 이후 건국 과정에서 주요 관료와 지도층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5]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산업화 과정은 학벌주의를 더욱 공고화했다. 고도성장기 정부와 대기업은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은 명문대 졸업생들을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인재로 간주하여 선호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정 명문대 출신들이 정계, 재계, 관계의 요직을 장악하는 카르텔이 형성되었고, '명문대 입학이 곧 성공'이라는 공식이 사회 전반에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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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현황 및 비교
요약
관점
학벌주의는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다만 서구권은 '계급'과 '엘리트 재생산'의 측면이 강한 반면, 동아시아는 '시험 성적'에 기반한 서열화가 두드러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미국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철저한 능력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 사립대 출신이 정계, 법조계, 금융계 상층부를 장악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미국 학벌주의의 특징은 '레거시 입학'이라 불리는 동문 자녀 특혜 입학 제도가 합법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니얼 골든은 그의 저서에서 이러한 제도가 부유층의 특권을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음을 비판했다.[6] 또한 입시 과정에서 성적뿐만 아니라 추천서, 과외 활동 등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반영될 수 있는 정성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다만 미국 사회는 학부 간판보다는 대학원(로스쿨, 메디컬 스쿨, MBA)에서의 전문 교육이나 실질적인 직업적 성취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한국에 비해 패자부활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영국의 학벌주의는 전통적인 신분제 및 계급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소위 '옥스브리지'로 불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이 총리, 장관, 고위 관료, 판사 등 지배층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명문대 진학이 이튼 칼리지와 같은 사립 기숙학교 출신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법부 고위직과 군 장성 등 주요 엘리트 집단에서 사립학교 및 옥스브리지 출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 학벌이 계급 재생산의 핵심 기제로 작동함을 보여준다.[7]
프랑스
프랑스는 대학 평준화를 지향하여 일반 국립대학 간의 서열은 미미한 편이다. 그러나 소수 정예 엘리트 양성 기관인 그랑제콜이 별도로 존재하여 극심한 이중 구조를 보인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국립행정학교나 에콜 폴리테크니크 등 그랑제콜 출신들이 국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분석하며 이들을 '국가 귀족'이라 명명했다.[8] 그랑제콜 시스템은 선발 과정이 철저히 국가 시험 성적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부모의 재력보다 학생 본인의 시험 수행 능력을 중시하는 한국의 학벌주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일본
일본은 대한민국 학벌주의의 모델이 된 국가로, 학벌(学閥, 가쿠바츠)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에서 유래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설립된 제국대학, 특히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이 관료 사회와 정계를 장악하는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9] 기업 채용 시 특정 대학 출신만 지원을 받거나 뽑는 '지정교 제도'가 존재했었으며, 대학 입시의 편차치에 따른 서열화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기 불황과 인구 감소로 인해 기업들이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학벌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독일
독일은 학벌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로 꼽힌다. 대학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어 대학 간 서열이 거의 없으며, 듀얼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직업 교육을 통해 마이스터가 되면 높은 사회적 대우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독일 사회에서는 출신 대학의 간판보다는 박사 학위 소지 여부나 해당 전공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더 중시된다.[10]
아프리카 및 개발도상국
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학벌주의가 자격증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로널드 도어는 그의 저서 《졸업장 병》에서 후발 산업 국가일수록 교육이 지식 습득보다는 자격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11]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구 식민 종주국의 명문대 학위나 해외 유학파라는 배경이 권력 획득의 주요 수단이 되며,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학력 실업자가 양산되는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학벌주의 기제와 폐해
대한민국에서 학벌주의는 대학 서열화, 노동 시장의 선별 기능, 학연 네트워크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작동한다. 대학은 피라미드 형태의 견고한 서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은 이 서열의 위치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척도다.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출신 학교를 성실성과 학습 능력을 담보하는 효율적인 필터링 도구로 사용해 왔으며, 이는 비명문대 출신에게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학벌주의는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낳는다. 교육 현장은 입시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여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고,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가계 경제를 위협하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이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12] 또한 수많은 인재가 적성보다는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한 후 반수나 편입에 매달리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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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및 개선 논의
학벌주의는 개인의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사회 정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7년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도입하여 출신 학교, 학점, 가족 관계 등을 가리고 직무 능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분석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비수도권 대학 출신 합격자 비율이 상승하는 등 일정 부분 학벌 완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3] 교육계에서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이나 지방대 육성 등을 통해 대학 서열 구조 자체를 완화하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제도적 변화뿐만 아니라, 학벌이 아닌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고 다양한 직업 경로를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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