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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굽타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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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굽타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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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굽타 왕조는 서기 6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인도 동부의 마가다를 통치했던 왕조이다. 후굽타는 동부 말와 또는 마가다의 통치자로서 굽타 제국을 계승했지만, 두 왕조를 연결하는 증거는 없다. 이들은 서로 다른 가문으로 추정된다.[3] "후굽타"는 통치자의 이름이 접미사 "-굽타"(아디트야세나의 아프사드 비문에 나오는 것처럼 후기 브라흐미 :)로 끝났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으로, 그들이 자신들을 굽타 제국의 후계자로 묘사하기 위해 이러한 이름을 사용했을 수 있다.[4]

간략 정보 후굽타 왕조,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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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굽타 제국이 쇠퇴한 후 후굽타 왕조가 뒤를 이어 마가다의 통치자가 되었다.[3] 왕조의 창시자인 크리슈나굽타의 딸은 마우카리 왕조의 아디트야바르만 왕자와 결혼했다고 전해진다. 아디트야세나의 아프사드 비문에 따르면 크리슈나굽타의 손자 지비타굽타는 히말라야 지역과 벵골 남서부에서 군사 원정을 수행했다.[4]

지비타굽타의 아들 쿠마라굽타의 치세 동안 왕조는 마우카리 왕조와 경쟁을 벌였다. 쿠마라굽타는 554년에 마우카리 왕 이샤나바르만을 물리치고 프라야가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들 다모다라굽타는 마우카리에게 역전패를 당했다.[4]

다모다라굽타의 아들 마하세나굽타는 푸시야부티 왕조와 동맹을 맺었다. 그의 여동생은 통치자 아디티야바르다나와 결혼했다. 그는 카마루파를 침공하고 수스티타바르만을 격파했다.[4] 그러나 그는 이후 세 명의 침략자들, 즉 마우카리 왕 샤르바바르만, 카마루파 국왕 수프라티스티타바르만, 토번 첸포 송첸캄포와 맞닥뜨렸다. 그의 가신인 샤샨카도 그를 버렸다(그리고 나중에 독립된 가우다 왕국을 세웠다). 마우카리 왕 샤르바바르만은 다모다라굽타를 물리치고 575년경 마가다를 침공하여 우타르프라데시 전체의 통치자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5][6] 이러한 상황에서 마하세나굽타는 강제로 마가다를 떠나 말와로 대피했다. 그 후, 푸시야부티 황제 하르샤는 마가다에서 후굽타 통치를 복원했고, 그들은 하르샤의 봉신으로서 마가다를 통치했다.[3]

하르샤가 죽은 후 후굽타 통치자 아디트야세나는 북쪽의 갠지스강에서 남쪽의 초타나가르, 동쪽의 고마티강에서 서쪽의 벵골만까지 확장되는 대규모 왕국의 주권자가 되었다.[4] 그러나, 그는 찰루키아에게 패배했다.[7]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인 지비타굽타 2세는 서기 750년경 카나우지의 바르만 왕조의 야쇼바르만에 의해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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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군주

알려진 후굽타 통치자는 다음과 같다: [8][4][9]

Thumb
아디트야세나의 아프사드 비문 (r. 655c. -680 CE)는 후기 굽타 왕조의 계보를 아디티야세나까지 확립한다.
  • 니르파 스리 크리슈나굽타, r. 490c. -505 CE
  • 데바 스리 하르샤굽타, r. 505c. -525 CE
  • 스리 지비타굽타 1세, r. 525c. -550 CE
  • 스리 쿠마라굽타, r. 550c. -560 CE
  • 스리 다모다라굽타, r. 560c. -562 CE
  • 스리 마하세나굽타, r. 562c. -601 CE
  • 스리 마다바굽타, r. 601c. -655 CE (왕비: 슈리마티)
  • 마하라자디라자 아디트야세나, r. 655c. -680 CE (왕비: 코나데비)
  • 마하라자디라자 데바굽타, r. 680c. -700 CE (왕비: 카말라데비)
  • 마하라자디라자 비슈누굽타 (왕비: 일자데비)
  • 마하라자디라자 지비타굽타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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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푸라의 굽타

11세기와 12세기에 라키사라이구 주변 지역을 통치했던 소왕국은 굽타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이후에 살아남은 후굽타 계통으로 연결되었다.[10] 그들의 통치에 대한 증거는 1919년에 발견된 판초브(Panchob) 동판 비문에서 나온다.[11]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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