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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 문화

무로마치 시대 말기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주도한 일본 전통 문화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히가시야마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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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 문화(일본어: 東山文化)는 무로마치 시대 말기의 일본 건축, 일본 회화일본 연극 분야의 혁신을 포함하는 일본의 문화의 한 부분이다. 1467년 오닌의 난 이후 일본 사회는 전란에 휩싸였지만 이 속에서도 다도, 노, 정원, 렌카 등 다양한 일본 고유의 예술이 발달할 수 있었다. '히가시야마'라는 명칭은 15세기에 수도 교토시의 동쪽 언덕(東山 히가시야마)에 있는 별장으로 은퇴한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시작하고 예술가들을 장려했기 때문에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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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쇼지의 은각(긴카쿠)과 정원. 아시카가 쇼군의 교토 히가시야마 언덕에 있는 저택이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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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야마 문화를 발전시킨 아시카가 요시마사 쇼군 (도사 미쓰노부의 15세기 후반 그림)

14세기의 아시카가 막부아시카가 요시노리 하에서 명나라와의 조공책봉 관계로 외교 관계를 갱신했다. 중국 문화에 접근하면서 막부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를 통해 최신 문화 유행을 수입했지만, 뚜렷한 일본적 미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요시마사의 영향력의 중심성과 그가 은거처를 지은 교토시의 지역 이름을 따서 "히가시야마 문화"로 알려지게 되었다. 요시마사는 혼자서 미학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후원했으며, 귀중한 비평을 제공했다.[1]

주로 선불교의 이상과 미학, 특히 오산 제도 아래 사찰들과 와비·사비의 개념에 기반을 둔 히가시야마 문화는 일본 다도, 이케바나(꽃꽂이), , 수묵화의 발전을 중심으로 했다. 오늘날 일본 선 미학으로 흔히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이 시기에 기원했다. 히가시야마 문화는 종종 기타야마 문화와 대조되는데, "기타야마 문화"는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나타났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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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안지 본당인 구리 내부. 히가시야마 문화에서 양식화된 와시쓰 (후스마, 다다미, 쇼지)와 같은 일본 전통 스타일 문화 요소가 특징이다.

요시마사의 은거 별장은 그의 사후 지쇼지(은각사)로 바뀌었다. 이곳은 교토시사쿄구에 위치하며 히가시야마 문화 발전의 중심지였고 선과 와비·사비 미학으로 유명했다. 은퇴한 쇼군은 많은 예술가, 시인, 궁정 귀족들을 그의 별장으로 초대하여 그들의 예술 발전을 장려했다. 방대하고 귀중한 유물이 컬렉션처럼 모여 히가시야마 보물로 알려지게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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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인물

히가시야마 문화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예시

도구도 건물 구조에는 도진사이(Dōjinsai)라고 불리는 쇼인 양식의 방이 포함되어 있다. 원래 바닥에 벽난로가 내장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도진사이는 다실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된 방의 가장 초기 현존하는 예로 간주된다.[4]

이 시기에는 특히 지쇼지에서 많은 건축 혁신이 있었으며, 이는 17세기 건축의 쇼인 양식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요소 중 하나는 도코노마로, 족자가 걸려 있고 꽃이나 다른 작은 물건들이 놓여 방의 미적 감각을 높이는 작은 벽감이다. 위대한 수묵화가 셋슈는 지쇼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이 시기에는 일본 회화의 가노파와 초기 형태의 다도 (일본)도 탄생했다. 다도는 16세기에 센노 리큐에 의해 더욱 체계화될 것이다.[5]

중요한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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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이 기간의 주목할 만한 날짜는 다음과 같다.

  • 1482년 2월 21일 (분메이 14년 2월 4일): 은각사 건설 시작.
  • 1490년 1월 27일 (엔토쿠 2년 1월 7일): 전 쇼군 요시마사가 히가시야마도노 저택에서 56세의 나이로 사망,[6] 이는 히가시야마 분카의 종말의 시작을 알렸다.

예시

히가시야마 문화의 예는 다음과 같다.

건축

서예와 회화

같이 보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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