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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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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이탈리아어: Giacomo Balla, 1871년 7월 18일~1958년 3월 1일)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미술 교사, 시인으로, 미래주의의 핵심 인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림에서 빛, 움직임, 속도를 묘사하여 작품 속에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지만, 다른 주요 미래주의자들과 달리 기계나 폭력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재치 있고 기발한 작품을 선보였다.

간략 정보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신상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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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요약
관점

자코모 발라는 1871년 7월 18일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토리노에서 사진에 관심이 많던 화학자 조반니 발라(Giovanni Balla)와 루치아 발라(Lucia Balla)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8년 아버지 조반니 발라가 사망하자, 발라는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석판화 공방에서 일하기 시작했다.[1]

20세가 될 무렵, 시각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지역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초기의 몇몇 작품은 전시회에 출품되기도 했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1895년 로마로 이주하여 엘리사 마르쿠치(Elisa Marcucci)와 만나 결혼했다. 그는 수년 동안 삽화가, 풍자화가, 초상화가로 활동했으며, 189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로마와 베네치아뿐 아니라 뮌헨, 베를린, 뒤셀도르프, 파리살롱 도톤, 로테르담의 화랑 등 주요 유럽 도시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1902년경 그는 움베르토 보초니지노 세베리니에게 분할주의 기법을 가르쳤다.[2]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의 영향을 받아, 자코모 발라는 빛과 움직임, 속도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미래주의 양식을 받아들였다. 그는 1910년 ‘미래주의 선언’에 서명했으며, 당시 이미 확립된 예술가로서 다른 서명자들보다 약 10년가량 나이가 많았다.[1] 그의 새로운 회화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1912년의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과 1914년작 《추상적 속도 + 소리》(이탈리아어: Velocità astratta + rumore)가 있다.

그는 또한 《미래주의 회화: 기술 선언문》(Futurist Painting: Technical Manifesto)의 저자로, 회화는 “역동적 감각 그 자체를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1914년에는 미래주의 가구와 이른바 ‘반중립적(antineutral)’ 의상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으며, 조각 작업에도 착수했다.[4] 1915년에는 ‘힘의 선’(Linee di forza del pugno di Boccioni)을 주제로 한 잘 알려진 조각 작품 《보초니의 주먹》(이탈리아어: Linee di forza del pugno di Boccioni)을 제작했다.[5]

발라는 처음에는 파시즘에 호의적이었으나 이후 입장을 바꾸었고, 이로 인해 한때 그를 높이 평가하던 이탈리아 정권과 문화계에서 외면당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그의 작품은 다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6] 1930년대에 그는 미래주의와 추상을 모두 포기하고 자연주의적 화풍으로 돌아갔다.[6][1] 자코모 발라는 1958년 3월 1일 로마의 자택에서 사망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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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

Thumb
《사랑의 숫자》(Numeri innamorati), 1923년

발라의 1909년 작품 《가로등》은 빛, 대기, 움직임에 대한 그의 탐구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발라는 붓놀림으로 반복되는 V자 형태의 패턴을 사용했다. 강하고 명확한 붓자국은 가로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밝기를 표현한다. 또한 발라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는데, 램프 중심의 흰색과 노란색이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차 차가운 색조로 바뀌며 확산된다.[7]

발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1912년의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은 움직임, 나아가 시간의 흐름을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움직이는 대상을 여러 단계로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운동의 순간을 포착했다.[8] 발라는 개가 주인을 따라가며 안간힘을 쓰는 동작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개의 다리, 꼬리, 그리고 줄을 반복해서 그렸다.[9] 이러한 접근법은 여러 면을 동시에 보여주려는 입체주의의 영향 아래 있으며, 또한 움직임의 여러 단계를 사진으로 포착하던 초기 기법인 크로노포토그래피(연속사진술)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1912년작 《바이올리니스트의 손》은 연주 중인 음악가의 격렬한 손동작을 묘사한 것으로, 입체주의와 에티엔쥘 마레,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사진 실험에서 영감을 얻었다.[10][11]

발라는 1912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제작된 추상 시리즈 《무지갯빛의 상호침투》에서 빛의 경험을 사물 인식과 분리해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였다.[12]

1913~1914년에 제작된 《추상적 속도 + 소리》는 자동차로 상징된 속도의 연구로, 원래는 삼면화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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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1987년, 그의 작품 일부가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근대 미술현대 미술 전시회 도쿠멘타 8에 전시되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지만, 다른 주요 미래주의자들과 달리 기계나 폭력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재치 있고 기발한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14]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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