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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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기 375년 (빠르면 300년)부터 568년까지 지속된 시기이며, 서로마 제국의 쇠퇴가 진행 및 멸망한 이후 시기에, 주로 게르만족 및 훈족 등 여러 민족들이 주로 로마의 영토에 해당하는 유럽 지역으로 침입한 때이다. 영어권에서는 독일어 용어 Völkerwanderung[note 1]을 번역한 Migration Period (민족 대이동기)라고 하며, 로마 및 그리스의 관점으로 보아, 야만인의 침입기라고도 한다.[2]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시작 및 종료 시기에 대해 역사가들 사이에 이견들이 존재한다. 시작 시기는 375년에 아시아에서 온 훈족이 유럽을 공격하던 때로 널리 받아들여지며, 끝난 시기는 568년에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정복한 때[3] 나 700년과 800년 사이 어느 시기로 받아들여진다.[4] 여러 요인들이 게르만의 대이동 현상에 기여했으며, 그 각자 요소들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의 거리다. 로마 제국과 외부 민족들은 382년을 시작으로 로마 제국내에 이민족들이 정착하게끔 하는 조약들을 맺었다.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등의 전신 국가인 프랑키아를 훗날에 세운, 프랑크족들은 로마 제국에 정착하였고 갈리아 북동부를 지키라는 업무를 부여받았다. 서로마 제국은 라인강을 건너 침입해오는 수에비족과 반달족에게 처음으로 피해를 입었다. 서로마 제국의 인구 감소와 더불어 여러 부족들 간의 분쟁이 잇따르면서, 점차 게르만족 및 로마인 군인들에게 권력이 이동하였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 이 이동의 결과인지 혹은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의견이 상충된다. 동로마 제국은 상당한 인구 감소 및 침입해오는 이민족들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했으나, 이민족들의 영향을 덜 입었고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근대 시대 때,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보다 부정적인 관점으로 점차 서술되었고,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기여한 것이라고 점점 여겨졌다. 멸망한 서로마 제국이 있던 곳에서 야만왕국들이 5-6세기에 생겼고 중세 전기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민족들의 이주는 전투원이나 부족민 등 10,000명에서 20,000명 정도를 이뤘으며,[5] 당시 로마 제국의 평균 인구 4천만 명과 비교됐을 때, 100여 년 기간에 이들의 이주 숫자는 750,000명을 넘지 못했다. 이주 행위가 로마 제국 전 기간에 발생한 흔한 것이었음데도,[6] 19세기에 이주 행위가 게르만족의 이동 시기에 해당하는 대략 5세기에서 8세기에 이뤄진 것으로 정의했다.[7][8] 첫 이민족의 이동은 고트족 (동고트족, 서고트족 포함), 반달족, 앵글로색슨족, 랑고바르드족, 수에비족, 프리시이족, 유트족, 부르군트족, 알레마니족, 스키리이족, 프랑크족 등 게르만족들의 주도로 이뤄졌으머, 이들은 훈족, 아바르족, 슬라브족, 불가르족 등에게 서쪽으로 밀려나간 것이었다.[9]
바이킹, 노르만족, 바랑기아족, 마자르족, 무어인, 튀르크족, 몽골인 등의 이민족 침입 역시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특히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아나톨리아, 중유럽, 동유럽), 보통은 민족대이동기의 범위 밖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