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의 제87·88·89대 내각총리대신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고이즈미 준이치로(일본어: 小泉 純一郎, 1942년 1월 8일 ~ )는 일본의 정치인 가문, 정치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 純一郎 | |
내각 공보실에서 공표한 초상 | |
일본의 제87·88·89대 내각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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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2001년 4월 26일~2006년 9월 26일 |
전임: 모리 요시로(제85·86대) 후임: 아베 신조(제9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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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942년 1월 8일(1942-01-08)(82세) |
출생지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
정당 | 자유민주당 |
부모 | 고이즈미 준야 (부), |
배우자 | 미야모토 가요코 |
자녀 | 고이즈미 코타로 (장남), 고이즈미 신지로 (차남) |
중의원 의원(12선)과 내각총리대신(제87·88·89대), 우정대신(제56대)과 후생대신(제73·74·86대), 자유민주당 총재(제20대)를 지냈으며 총리로 재임할 당시 2차 대전 이후의 일본 정권으로는 사토 에이사쿠와 요시다 시게루 다음으로 두번 째로 긴 장기 집권기간 (1,980일)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로 사임하지 않고 임기를 끝까지 마친 자유민주당 총재가 되었다. 그의 첫 임무인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김대중 정부 시절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온전한 한일 관계 유지에 노력하였으나 노무현 정부 시절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대한민국의 네티즌들로부터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고이즈미의 뒤를 이은 아베 신조 내각과 후쿠다 야스오 내각 또한 고이즈미의 노선을 기본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등 2000년대 일본 정치는 물론 세계 정치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퇴임 후 수년간 대중 앞에 나서지 않던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13년 후쿠시마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포기 옹호론자로 복귀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 임기 중과 이후 모두 포함해서 자민당이 지지해 왔던 친 원자력 발전과는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3대에 걸친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조부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郎)는 몸에 큰 문신을 하고 다녀 "문신 장관"이라고도 불렸는데, 하마구치 총리와 와카쓰키 총리 내각에서 우정성 장관을 지냈으며 우편 민영화의 초기 옹호자였다. 부친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는 방위청 장관도 역임했다.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는 배우로 활동 중이며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는 2009년 7월 21일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 준이치로의 지역구를 이어받아 출마, 당선되었다.